검색결과
-
성북이 사랑하고 성북을 사랑한 신경림 시인, 잠들다한국 문단의 거목 신경림 시인이 지난 22일 타계했다. 향년 89세. 암으로 투병하던 신경림 시인의 장례는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다.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문예지 ‘문학예술’에 시 ‘갈대’ 등이 추천되며 등단했다. 이후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목계장터’ 등 많은 이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시인은 성북구 정릉2동에서 1978년부터 거주했으며,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정릉에서 서른해를’, ‘길음시장’ 등을 발표하며 한국뿐만 아니라 성북을 대표하는 문인으로도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는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시인은 성북문화재단과도 인연이 깊다. 2012년에 출범한 성북문화재단의 초대 비상임이사를 역임했으며, 거주지 근처에 위치한 성북구립정릉도서관의 명예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성북문화재단은 성북의 문인들 중 한 명을 매년 선정해 집중 조명하는 문학과 예술 간 융합프로젝트인 ‘문인사 기획전’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신경림 시인을 선정하기도 했다. 2015년 성북예술창작터에서 열린 ‘문인사 기획전 : 신경림 - 사진관집 이층’ 전시는 그의 문학사를 지역 안에 다시금 환기 시키는 한편, 시각예술작가(홍장오, 스톤 김)와의 협업을 통해 신경림의 문학을 시각화하는 작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올해 성북문화재단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16개 구립도서관에서 신경림 시인을 기억하는 행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성북문화재단은 성북을 사랑하고 성북이 사랑했던 신경림 시인의 명복을 빈다며, 앞으로도 신경림 시인을 시작으로 성북의 문인과 그 작업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민요기행'신경림 시인 별세민중시의 장을 연 신경림(89세) 시인이 22일 별세. 22일 오전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신경림 시인은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민중시인으로 꼽히는 문인이다. 1935년 4월 6일 충북 충주 출생, 충주고, 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지>에 ‘갈대’, ‘묘비’ 등의 작품 추천 등단.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 도시에서 밀려난 서민, 정처 없는 유랑민 등 민초들의 애환과 굴곡진 삶의 풍경을 질박하고 친근한 생활 언어로 노래해온 그는 평생을 '민중적 서정시인'으로 살았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그는 몰랐다."('갈대' 전문) 시 '갈대'는 인간의 보편적인 고독과 고뇌를 탁월한 시적 감수성으로 포착해 서정적이고도 대중적인 언어로 길어 올린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즐겨 찾는 국민 애송시 '가난한 사랑노래'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친숙한 말들로 가난과 상실을 아프게 노래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을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이 시는 쓰러지고 짓밟힌 약한 존재들, 흔히 '민초'(民草)라 불리는 기층민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온 고인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다.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일찍이 신경림의 시 세계를 두고 "그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서련다는 명료한 자의식으로 정체성의 징표를 삼으려 했다. 약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대변자 되는 것이 시인의 소명이라는 자기부과적 계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농무' 이후의 시편들이 그러한 점에서는 회의 없는 신앙고백으로 일관돼 있다"고 쓰기도 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시 '목계장터'에서) 그의 시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목계장터'에서 감지되듯이 떠돌이, 방랑, 바람, 유랑과 같은 말이다. 가난하고 척박한 대지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아 정처없이 떠도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애환을 평이하고 간결한 언어로 노래한 것은 그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기류다. 만 20세의 어린 나이에 등단한 시인은 그러나 등단 직후 1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중단했다. 대신 그는 강원도와 충청도 등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광부, 농부, 상인 등의 직업을 전전했고, 이때 각양각색 사람들의 고되고도 보람된 삶을 뼛속 깊이 체험한다. 젊은 시절의 이런 경험은 이후 그를 민중시의 대가,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시인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문학적 토양이 된다. 그는 이후 서사 장시, 기행시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시를 계속 선보임으로써 한국 서정시의 영역을 확장하고, 시 소재의 다양화 측면에서도 한국 시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반적으로 대지에 밀착한 삶의 언어로 쓰인 신경림의 작품들은 당대의 문학과 사회 현실을 하나로 묶는 '민중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시발점이 바로 내년이면 출간 50년을 맞는 그의 첫 시집 '농무'였다. 이 시집의 표제시 '농무'(農舞)에서 '농무'는 농민들이 풍물놀이에 맞춰 추는 춤사위를 뜻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춤사위가 한바탕 지나간 뒤의 농민들의 신명과 울분을 민중적 언어로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시 '농무'에서) 문학 외에 신경림의 공적인 삶의 또 다른 주요 축은 민주화 운동이었다. 군부독재의 칼날이 서슬 퍼렇던 1980년대에 시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 민주화청년운동연합 지도위원, 민족민주통일운동연합 중앙위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상임의장 등 재야 운동단체들에서 자리를 맡아 반독재 투쟁을 펼쳤다. 이런 활동은 1990년대에도 이어져 대표적인 진보성향 문인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의 마지막 시집은 출판사 창비에서 2014년 나온 그의 열한번 째 시집 '사진관집 이층'이었다. 창비는 1975년 3월 그의 첫 시집 '농무'를 시선 시리즈의 첫 권으로 출간한, 그와는 아주 인연이 깊은 출판사다. 고인은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에서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본다. 인생의 마지막 장(章)에 다다른 시인이 자신의 삶과 문학 전체를 담담하게 요약한 듯한 시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시인은 그렇게 한번도 자신을 불행하다 여기지 않은 채 평범한 사람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다가 숨을 거뒀다.
-
도자의 여로(145)<br> 분청철화어문병편쏘가리 문양은 문양인데 이규진(편고재 주인) 생선회 중에서 비싸기로 말하자면 쏘가리회를 배놓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 탓인지 나이가 들도록 그동안 한 번도 시식을 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여름 지인의 지인되는 분의 안내로 난생 처음 바로 그 유명한 쏘가리회를 먹어 볼 기회가 있었다. 충주에서 단양 쪽으로 가다 남한강 강변에 위치한 어느 민가였는데 간판도 없는 곳이었지만 쏘가리 전문점으로는 너무도 유명한 곳이라는 것이었다. 그 곳에서 맛본 쏘가리회와 매운탕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특히 회는 비린내도 나지 않고 꼬들꼬들해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쏘가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계룡산 분청철화중에는 물고기 문양이 더러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압권은 단연코 쏘가리 문양이라고 할 수 있다. 몇 줄의 날카로운 선으로 그려내는 쏘가리 문양은 그야말로 극대화 된 추상무늬의 대표를 보는 듯한 느낌인 것이다. 쏘가리는 한자로 궐어(鱖魚)라고 하는데 궐(鱖)자가 대궐의 궐(闕)자와 음이 같아 잉어와 마찬 가지로 출세 또는 고귀한 신분에 대한 꿈과 바람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상징적 문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신동국여지승람>에는 공주목 특산으로 쏘가리를 기록하고 있어 계룡산 분청철화에 쏘가리 문양이 보이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늘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나는 물고기 문양이 들어간 도편을 꽤 여러 점 갖고 있다. 청자도 있고 분청도 있고 백자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계룡산 분청철화 중에서도 쏘가리 문양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무언가 화룡점정 중에서도 눈알이 빠진 듯한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래 계룡산 분청철화에 쏘가리 문양아 들어간 도편을 한 점 구했다. 와, 그렇다고 하면 평소의 한과 원을 푼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쏘가리 문양은 문양인데 온전치가 않은 것이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제대로 살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머리와 몸체는 없고 뒷지느러미와 꼬리 부분만 살아 있어 쏘가리 문양 자체로도 불완전품인 것이다. 하지만 두텁게 바른 백토 분장이며 먹빛에 가까운 쏘가리 문양이며 조각이 난 병편이라고는 하지만 온전했을 당시의 정취랄까 여운을 느끼기에는 충분해 아쉬운 대로 감사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을 듯싶기도 하다. 계룡산 분청철화 쏘가리 문양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니 무더운 여름날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민가에 앉아 쏘가리회와 매운탕으로 입맛을 다시던 일이 어제 일 같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당시 그런 호사를 누리게 해주었던 지인의 지인이 되는 분을 그 후 한번도 뵙지를 못해 지금까지도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다. 서울의 어느 맛집에 앉아 회포라도 풀며 지난번에 있었던 배려와 고마움을 되갚을 기회가 있어야 할텐데 그런 기회가 졸연히 없을 것 같아 이 또한 숙제 중의 숙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제26회 서편제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 고수 경연대회(05/04-05)■ 대회명칭 제26회 서편제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고수경연대회 ■ 대회목적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판소리'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경연대회를 통한 인재발굴 및 육성 ■ 대회일정 2024년 5월 4일(토) ~ 2024년 5월 5일(일) ※ 추모행사: 5. 6.(월) 14:00, 보성판소리성지 ■ 대회일시 및 장소 ■예선 ■본선 ※ 위 일정 및 장소(예선‧본선)는 상황에 따라 취소 또는 변경될 수 있음 ※ 학생부 종합: 판소리 학생 고등부 대상수상자와 고수 학생부 대상수상자가 경연 ■ 참가자격 대한민국 국민으로 18세(2006. 5. 3. 이전 출생자) 이상의 남녀 또는 학생(초·중·고등학생) 1. 판소리 명창부는28세(1996. 5. 3. 이전 출생자) 이상 가. 판소리 5바탕 중 한바탕 완창자 또는 2시간 이상 발표회를 가진 자, 또는 판소리 분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화재청장상 수상자 나. 증빙자료 제출 : 완창 발표회 음원(CD) 또는 공연 리플렛또는 수상 증명서 (해당 부처 발급용 또는 주관단체 발급용 인정) 2. 판소리 신인부는 18세(2006. 5. 3. 이전 출생자) 이상 ~ 64세(1959. 5. 4. 이후출생자) 미만,장년부(노년부)는 65세(1959. 5. 3. 이전 출생자) 이상 3. 기존 수상자 참가 제한(본대회 및 타대회 모두 포함) - 동일종목·분야에서 최고훈격을 수상한 자는 최고훈격이 동일한 종목‧분야참가 제한 - 단, 최고훈격이 상이한 경우 동일종목‧분야 참가 가능하며, 이 경우에도 훈격의 하향신청은 불가 - 장년부(노년부)의 경우 타대회 수상 후 2년 경과한 수상자는 참가 가능 ■ 참가신청 1. 제출서류: 참가신청서 1부(소정양식, 반명함판 사진부착) ※ 판소리 명창부: 완창 발표회 음원(CD) 또는 리플렛 또는수상 증명서등 증빙자료 제출 ※ 경연대회 당일: 신분증 지참 필수 2. 신청서 교부 및 접수 ◦ 접수기간 : 2024. 3. 25.(월) ~ 4. 30.(화) 18:00까지 도착분 ◦ 참 가 비 :없음 ◦ 접수방법 : 방문·전화·우편·e-mail·FAX ※ 본인 및 대리신청 가능 ◦ 접 수 처 : 서편제보성소리축제추진위원회(보성문화원) - e-mail : bsm2629@naver.com - F A X : (061)853-2629 - 우 편 : (59453)전남 보성군 보성읍 송재로 281-11, 보성문화원 ◦ 접수안내 : (061)850-5892 / 852-2621, 서편제보성소리축제 (http://www.boseong.go.kr/tour/festivity/sopyonje) ※ 접수 후 반드시 전화 확인하기 바람 ■ 대회부문 부 문 경연시간(예선/본선) 비 고 판소리 명창부 30분 내외 / 20분 이상 - 예선 경연대목: 추첨 - 본선 경연대목: 자유 선택 (단, 경연대목이 중복될 때에는추첨에 의함) 대학 및 일반부 15분 내외 / 15분 내외 - 예선과 본선의 소리대목 중복 불가 신인부(단심제) 5분 내외 장년부(단심제) 5분 내외 학생부 - 고등부 7분 내외 / 10분 내외 학생부 - 중등부 5분 내외 / 7분 내외 학생부 - 초등부 5분 내외 / 5분 내외 고 수 명고부 10분 내외 / 10분 내외 대학 및 일반부 7분 내외 / 7분 내외 신인부(단심제) 5분 내외 학생부 5분 내외 / 5분 내외 ※ 경연시간은 대회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조정할 수 있음. ※ 고수는 집행부 지정고수로 하며, 필요시 경연자 대동 가능 ※ 판소리 대학 및 일반부 : 후 창자는 바로 앞 창자의 소리대목을 다시 할 수 없음. 다만 바로 앞 창자 소리대목 전체의 ⅕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반부 또는 후반부에서 소리를 이끌어 나가거나 마무리를 위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함 ※ 판소리경연대회(신인부, 장년부, 학생부) 현장에서 대목 변경 가능 ■ 시상내용: 총 60명, 상금 104,600천원 본선 경연 완료 후 현장 시상(신인부, 장년부는 예선 경연 완료 후 현장 시상)(단위: 천원)※명창부 대상 특전: 수상자는 보성소리 발전연구 결과로 12개월이내에 보성군내에서 공연발표를 하게 되며, 이때 보성군은 1회에 한하여 공연 무대, 홍보, 음향등을 무상 지원 ※ 시상금은 소득세법에 의거 원천징수 8.8% 공제 후 무통장 입금 ※ 판소리 명창부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故)성창순상 시상금 지급 ※ 학생부 종합부문 수상자에 대해서는 부문별(판소리, 고수) 시상금은 지급되지 않음. ※청중평가단 인기상: 청중평가단만의 점수로 명창부 본선 경연자 중에서 결정 (훈격: 서편제보성소리축제추진위원장) ※부문별 장려상 - 판소리 학생부(고등부․중등부․초등부) 및 고수 신인부: 각 4명 선정 / 시상금 100천원 - 판소리 신인부 및 장년부: 각 5명 선정 / 시상금 200천원 ※본 행사 훈격 및 시상계획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심사항목 판소리 공력(30%) 박자(20%) 성음(20%) 음정(10%) 발림(10%) 가사(10%) 고 수 한배(30%) 공력(20%) 강약(20%) 기교(20%) 자세(10%) ※ 심사위원의 점수를 합산하여 고득점순으로 등위를 정한다. ■ 심사규정 1. 심사회피로 인한 경연자의 점수는 채점한 심사위원 점수 중 최고점과 최하점을제외하고 나머지 심사위원 점수의 평균점을 회피한 심사위원점수로 부여하여 합계점수를 산출한다. 2. 본 대회는 직접스승 및 8촌 이내 친인척의 심사회피제도를 적용하므로참가자는해당 심사위원의 심사회피를 경연전에 신청해야 한다. 만약 심사회피를 신청하지 않아 수상을 한 후 회피신청 사유가 있음이 발견될 경우에는수상 취소를 결정할 수 있고, 수상자는 상장, 상패, 상금을 반환하여야 한다. ※ 판소리 명창부에 한해 경연참가자의 이해관계가 있는 심사위원은 기피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서편제보성소리축제추진위원회 심사위원 선정위원회 직권으로 심사위원에서 배제한다.(예선과 본선 모두 적용) ■ 심사결과 발표방법 심사위원별 점수를 경연 직후 또는 후창자 경연 중에 스크린(전광판)으로 공개 ■ 수상자 결정방법 수상자는 심사결과에 따라 순위별로 결정한다. 같은 부문에 동점자가 있는경우에는 연장자를 선순위로 한다. 학생부에 동점자가 있는 경우에는 고학년을 선순위로 하며 같은 학년일 경우에는 생년월일을 대조하여 연장자를 선순위로 한다. ■ 기타사항 판소리·고수 경연대회 본선 및 시상식 마을회관 실시간 송출 ■ 세부 프로그램 일정표(안) 장소별 시간별 보성군문화예술회관 보성군 청소년문화의집 보성문화원 보성 판소리성지 월ㆍ일 시 간 1층 공연장 2층 연습실 5. 4. (토) 10:00 ~11:00 ◦전국판소리경연대회 - 명창부(예선) ※추첨: 08:30 ※ 명창부 본선 추첨 :예선 종료 직후 ◦전국판소리경연대회 - 대학 및 일반부 (예선) ※추첨: 08:30 ◦전국판소리경연대회 - 대학 및 일반부 (본선) ※추첨: 예선종료직후 ◦전국판소리경연대회 - 신인부 - 시상식 ※추첨: 08:30 ◦전국고수경연대회 -학생부(예선) ※추첨: 08:30 11:00 ~12:00 12:00 ~13:00 13:00 ~ ◦전국판소리경연대회 - 학생부(예선) ※추첨: 10:00 초 10:30 중 11:00 고 ◦전국고수경연대회 -신인부, 대학·일반부, 명고부(예선) - 시상식(신인부) ※추첨: 10:00 신인부 10:30 대학·일반부 13:00 명고부 5. 5. (일) 09:30 ~10:00 ◦전국판소리경연대회 - 장년부(단심제) - 시상식 ※추첨: 09:00 ◦전국판소리경연대회 - 학생부(본선) ※추첨: 09:00 10:00 ~11:00 ◦전국고수경연대회 -학생부ㆍ대학·일반부ㆍ 명고부(본선) ※추첨: 09:00 11:00 ~11:30 ◦보성군립국악단 특별공연 12:00 ~12:50 12:50 ~14:00 ◦전년도 명창부 대상축하공연 ◦명인‧명창 고수열전 ◦학생부종합대상경연대회(본선)- 판소리 및 고수 ※추첨: 12:00 14:00 ~15:00 ◦명창부(본선) 15:00 ~16:00 ◦역대 대통령상 수상자 축하공연 ◦시상식 5. 6. (월) 14:00 ~15:00 ◦추모제, 추모공연 부대 행사 체험행사 <문화예술회관외부> ∙ 전통악기만들기 ∙ 캐리커쳐 음식코너 <문화예술회관 주차장> ∙ 보성주막집 ∙ 푸드코트 ※ 위 일정은 상황에 따라 취소 또는 변경될 수 있음. ■ 서편제보성소리축제 전국 판소리‧고수경연대회 역대 수상자 명단 구분 판소리 고 수 학생부 종합 명창부 대학‧일반부 신인부 장년부 학생부 명고부 대학‧일반부 신인부 학생부 고등부 중등부 초등부 제1회 1998년 - 추상수 성남 이정순 광명 - 김정은 여수여자고 최잔디 광주중앙초 - - - - - 제2회 1999년 유판길 서울 마미숙 광주 김연례 목포 - 박은실 광주예술고 김소진 광주동운초 - - - - - 제3회 2000년 박정아 광주 오혜연 서울 - - 임서연 군산 조나엽 강진 - - - - - 제4회 2001년 이귀례 익산 박명자 성남 - - 김소희 남원서진여고 강재민 광주문산초 - - - - - 제5회 2002년 허 숙 여수 김다정 광주 이동래 보성 - 김혜라 보성고 이성현 서울광장초 - - - - - 제6회 2003년 이재영 보성 백금렬 고양 - - 정지혜 서울국악예술고 김미영 광주풍암중 신혜인 광주경양초 - - - - - 제7회 2004년 허종열 서울 이은비 광주 - - 홍준표 대구 정아영 대구 양승은 광주 - - - - - 제8회 2005년 백금렬 보성 이숙영 서울 이기쁨 파주 - 유성실 김제 유다운 고흥 안유미 보성 고정훈 진도 이재진 경주 박초롱 경산 - - 제9회 2006년 라경자 고흥 박지영 서울 장세웅 서울 - 백민정 광주예술고 임한울 광주봉산중 양혜원 남원노암초 임용남 서울 김동근 광주 정상화 서울 - - 제10회 2007년 남궁정애 성남 김계영 서울 이일진 고양 - 이선미 광주예술고 이진우 서울국악예술중 정은영 광주대성초 김준영 완도 고현태 전주 박경도 광주 - - 제11회 2008년 문명숙 전주 채원영 남원 조혜숙 전주 - 오선지 전남예술고 윤영진 조선대부속중 김승수 광주도산초 정상화 안성 조가완 광주 이병열 광주 - - 제12회 2009년 박미정 광주 임성희 안성 김옥순 광주 - 주희라 광주예술고 조정규 전주온고을중 윤정이 광주교대부설초 정인성 광주 최재영 서울 김소라 서울 - - 제13회 2010년 이재영 보성 최한이 천안 양인심 순천 - 박경태 광주 박성열 익산 이승훈 광주 김병태 고양 박성우 고양 이진수 광주 - - 제14회 2011년 김학용 서울 오혜원 진도 정석호 광주 - 송선호 서울압구정고 이채은 화순제일중 양수아 목포하당초 조가완 광주 김정환 담양 정신이 전주 추재형 진도석교고 - 제15회 2012년 김현주 순천 송혜원 진도 김병희 대전 - 정서희 경남예술고 유시은 산청단성중 심민서 진주평거초 주현주 광주 장홍준 남원 양승화 순천 한재민 함평나산고 정서희 경남예술고 제16회 2013년 김명숙 서울 이철홍 목포 박창석 진도 - 정윤형 전주예술고 김가을 보성여자중 조세리 성남정자초 김준영 광주 진정남 울산 최승희 서울 조의연 영광초 정윤형 전주예술고 제17회 2014년 윤종호 나주 이선미 광주 이 숙 광주 - 김가을 보성고 노희선 화순제일중 김한별 보성남초 안연섭 광주 이주현 남원 이춘효 목포 박상민 광주예술고 김가을 보성고 제18회 2015년 윤상호 정읍 문해돋이 인천 김강인 남양주 - 박상훈 서울전통예술고 송자연 국립전통예술중 유송은 광주송우초 조요한 광주 대대호 광주 정행정 진주 양인승 진도국악고 박상훈 서울전통예술고 제19회 2016년 양희빈 서울 윤혜선 나주 김금자 창원 - 유시은 경남예술고 양수아 국립국악중 박정우 선일초 김제훈 강진 채규룡 진도 김보금 남원 윤지혁 목포덕인중 유시은 경남예술고 제20회 2017년 박정희 무안 김주리 서울 김은숙 광주 - 박서희 광주예술고 김선우 남원한빛중 박혜인 광주운남초 원대근 여수 박상민 안성 정대희 광주 윤지혁 진도국악고 박서희 광주예술고 제21회 2018년 어연경 고양 이이화 서울 양동용 서울 - 김정욱 광주예술고 박신웅 전주예술중 임아진 정읍한솔초 양인승 나주 한재민 광주 오영환 광주 윤지혁 진도국악고 김정욱 광주예술고 제22회 2019년 김미진 서울 정승기 광주 손순임 광주 - 윤지혁 진도국악고 박지민 국립국악중 이지윤 영천초 이충인 부산 조인경 경기 표진이 전주 김정욱 광주예술고 김정욱 광주예술고 제23회 2021년 유재순 서울 강예빈 전주 조헌성 전남 - 김수진 원광정보예술고 김송아 전주예술중 범하은 광주한울초 김성찬 전남 서형준 광주 박갑렬 전남 박수현 광주예술고 김수진 원광정보예술고 제24회 2022년 이은숙 제주 이다연 서울 김부자 고흥 - 장은탁 남원국악예술고 이예은 보성회천중 허정운 진도지산초 조인경 전주 우승연 부산 우성호 광주 채준서 진도국악고 - 제25회 2023년 임서연 무안 박시본 서울 김미영 창원 강호성 광주 정윤서 국립국악고 이예은 남원용북중 노규리 팔공초 이민후 담양 김강유 서울 박훈 광주 이지윤 광주 정윤서 국립국악고
-
서편제 소리축제 5월 4~6일전남 보성군은 오는 5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전통 음악축제인 제26회 서편제보성소리축제를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이번 축제는 제47회 보성다향대축제와 함께 열린다.서편제보성소리축제는 전국 판소리·고수 경연대회를 통해 신진 판소리 인재를 발굴하는 한편 이들에게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전통 예술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고 있다오는 5월 4일은 전국 판소리·고수 경연대회 예선이 펼쳐진다. 경연대회는 판소리와 고수 분야로 나눠 진행하며 명창·명고부와 대학 및 일반부·신인부·학생부·학생부 종합 등으로 열린다.5월 5일은 전국 판소리·고수 경연대회 본선·장년부·명창 고수열전·역대 대통령 수상자 축하공연·보성군립국악단 특별 공연과 함께 시상식이 예고돼 있다. 5월 6일에는 보성판소리성지에서 명창 추모제가 선보인다. 이 추모제는 판소리의 역사와 전통을 기리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보성소리 명창들의 업적을 추모하는 자리이다.대회 참가 희망자는 다음 달 30일 오후 6시까지 참가신청서와 증빙자료를 서편제보성소리축제추진위원회로 제출하면 된다.자세한 사항은 보성문화원에 문의하거나 서편제보성소리축제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철우 군수는 "서편제보성소리축제는 전통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전 세대에 걸쳐 전통 예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행사"라며 "국내외 관광객을 포함한 모든 분이 이번 축제를 통해 전통 음악의 매력을 깊이 있게 체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김윤아의 완창판소리 '정광수제 수궁가'오는 28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는 김윤아의 완창판소리 '정광수제 수궁가' 공연이 펼쳐진다. 수궁가는 전승되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유일하게 우화적인 작품으로, 수궁과 육지를 넘나들며 펼치는 토끼와 별주부 자라의 이야기를 다룬다.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라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리고 가지만, 토끼가 꾀를 내어 용왕을 속이고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성준-정광수-안숙선으로 이어져 내려온 '정광수제 수궁가'는 무게와 깊이가 있는 동편제와 시김새가 정교하고 화려한 서편제의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어 소리꾼으로서 내공과 역량을 요하는 소리이다. 소리꾼 김윤아는 국가무형문화재 제 5호 적벽가 이수자이며 현재 공연예술창작소 유쾌한 악당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통과 창작을 넘나드는 다양한 경험으로 판소리극 콘서트 "춘향이야기”, 김윤아 소리판 프로젝트 "양반가”, 판소리 전래동화 "호랑이를 타는 방법” 등의 창작작품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전통 판소리가 가진 매력을 전하기 위해 자신만의 색깔과 철학을 소리에 담아 작품을 통해 녹여내고 있다. 이번 공연에는 ‘우리소리 바리지’와 사물놀이‘느닷’동인인 이준형 명고가 함께한다.
-
고수 조용수의 세 번째 고(鼓), 일고오창…‘‘다섯 흥보와 잇닿다’고수(鼓手) 조용수가 자신의 이름을 내 걸은 세 번째 독주회 공연을 선보인다. ‘조용수의 일고오창’ 그 세 번째 무대인 ‘다섯 흥보와 잇닿다’가 오는 14일 오후 7시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펼쳐진다. ’일고수이명창’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소리판에서 고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의 존재는 소리꾼의 그림자 역할을 하게 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조용수 고수는 북이 중심이 되는 공연을 준비하게 됐다고 전한다.제3회 ’일고오창’은 박주희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외래교수의 사회로 진행된다. 조용수 고수는 "이번 공연은 판소리 다섯 마당(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은 모든 제(制)를 무대에 올리겠다는 목표의 시작점이다. 첫 번째로 ‘흥보가’의 다섯 ‘제’를 한 무대에서 모두 선보일 예정"이라고 전했다. 고수 조용수를 중심으로 다섯 명의 남자 소리꾼이 연창으로 완창 소리판을 만들어낸다. '만정제 흥보가'는 소리꾼 김준수와 함께 선보인다. 동편제를 바탕으로 만정 김소희가 새롭게 구성한 만정제 흥보가는 순화된 사설과 섬세한 목구성을 구사하며 애원성이 짙은 것이 특징이다. 만정제 흥보가 중 ‘초앞~저아전 거동보아라’ 대목으로 시작한다. '박록주제 흥보가'는 소리꾼 박성우와 함께 한다. ‘흥보가 형님 집 건너가서 매 맞는 대목’을 선보인다. 선배나 스승들의 더늠을 수용하고 다듬어 자신만의 개성 강한 소리로 만든 박록주제 흥보가의 끈끈한 해학미가 돋보인다.'강도근제 흥보가'는 소리꾼 임현빈과 함께 선보인다. 동편제를 바탕으로 대마디 대장단의 꿋꿋하고 장엄하고는 우조를 위주로 통성으로 소리를 만들고 선이 굵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소리 중간 중간 들려지는 재담이 묘미라 할 수 있다. '미산제 흥보가'는 소리꾼 유태평양은 조용수와 함께 눈대목인 ‘박타는 대목’을 들려줄 예정이다. '동편제의 우직한 성음과 서편제의 애절한 성음의 특징들이 조화를 이룬 미산제는 박초월 명창이 본인의 스타일로 만든 판소리 줄기 중 하나다. '동초제 흥보가'는 소리꾼 김수인이 들려줄 예정이다. 널리 알려진 동초제 흥보가 중 ‘화초장~제비 후리는 대목’이 기대된다. 동초제는 가사와 문학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설(辭說)이 정확하고 너름새(동작)가 정교하며, 부침새(장단)가 다양하다.또한 가사 전달이 확실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특징이 있다. 동초제 흥보가는 부자 놀보와 가난한 흥보, 부자가 된 흥보, 패가망신한 놀보의 극정구성으로 형성되어 있다. 휘날레는 전 출연진이 나와 관객과 함께 부르는 남도민요로 꾸며진다. 전라남도 지역에서 향유하는 육자배기토리 남도민요의 애절함과 신명이 기다리고 있다. 소리 김준수, 박성우, 임현빈, 유태평양, 김수인, 장구 조용수, 대금 이원왕, 아쟁 박희정, 가야금 황소라, 해금 조수아가 참여한다. 한편,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이수자인 고수 조용수는 중제18회 전국고수대회 대명고부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국립창극단 기악부 부장을 맡고 있으며,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겸임교수와 서울예술대학교 음악학부 한국음악전공 외래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
국립국악원, '창작국악 1세대' 이강덕 조명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은 창작국악 1세대 작곡가인 이강덕의 작품을 오는 7∼8일 예악당에서 공연한다고 4일 밝혔다. 이번 공연은 창작국악의 토대가 된 대표 작곡가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작곡가 시리즈Ⅲ'로 지금도 널리 연주되는 '메나리조 주제에 의한 피리 협주곡', '염불 주제에 의한 환상곡' 등 5곡을 연주한다. 이강덕(1928∼2007)은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 출신으로 국립국악원 국악사,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청주시립국악관현악단, 충주시립국악관현악단에서 연주자이자 작곡가, 지휘자로 활동했다. 1962년 관현악 '새하늘'로 국립국악원 신국악작곡공모에 당선돼 작곡가로 등단한 이후 80여 편의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다.
-
61만 유튜버 된 공무원…충주맨 '홍보의 신'평범한 공무원에서 61만 유튜버가 된 김선태 주무관이 그 비결을 '홍보의신'(21세기북스)을 통해 털어놨다. 요즘 충주시 유튜브가 핫하다. 이 유튜브 덕분에 충주시는 이제 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이름이 됐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충주시 유튜브 홍보를 혁신 사례로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수능에 충주시 관련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유튜브의 성공은 모두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 한 명의 기획에서 시작됐다.예산도, 전문가도 없이 맨땅에서 시작해 대박 유튜브를 만든 콘텐츠 기획 전략 충주시 공식 유튜브에 달린 댓글이다. 매주 화요일 저녁 6시마다 업로드되는 충주시 유튜브 영상은 평균적으로 조회 수 100만 회를 기록하고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다. 전 국민이 자기가 사는 지역도 아닌 충주시의 소식을 매주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충주시 유튜브 홍보를 혁신 사례로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심지어 수능에 충주시 관련 문제가 출제될 정도로 충주시가 핫한 도시가 됐다.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의 힘이다. 『홍보의 신』은 충주시 홍보맨으로 잘 알려진 김선태 주무관이 시장님이 ‘시켜서’ 시작한 유튜브를 성공시키기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은 홍보의 핵심과 브랜딩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전국 기초·광역 지자체 1위를 달성한 충주시 유튜브의 성공 비결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낡은 틀을 깨고 스스로 예외가 된 ‘충주시 홍보맨’의 파격적 홍보 비밀은 무엇인가? '충주시 홍보맨'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선태 주무관은 최근 다양한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충주시 유튜브 홍보를 혁신 사례로 언급하는가 하면 수능에 충주시 관련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저자가 기획부터 촬영, 출연, 편집까지 혼자 맡게 되면서 마주하는 실질적인 어려움과 이를 헤쳐 나가는 파격적이고 진솔한 경험이 담겨 있다. 상사에게 결재를 받는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있거나 재미없을 게 뻔한 주제를 홍보하도록 상부에서 지시할 때 등 마케팅 실무자라면 공감할 만한 상황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생각과 대처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공식 유튜브를 운영하는 실무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레퍼런스와 팁을 제공한다. 또한 기관의 공식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생길 수 있는 실수와 책임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인정받기 어렵고 경직된 조직 안에서 아이디어를 펼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무자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전하면서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 이 책을 통해 자타공인 ‘홍보의 신’으로 불리는 김선태 저자의 마케팅 노하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충주시립우륵국악단, 특별 기획연주회충주시립우륵국악단(단장 신성영)의 2024년 첫 번째 연주회가 내달 7일 오후 7시 충주시 문화회관에서 열린다.이번 특별 기획연주회는 중부내륙연계발전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및 충주시의 대한민국 문화도시 선정에 따른 시민들이 이루어낸 성과를 축하하는 의미의 축하연주회로 진행된다.정도형 상임지휘자의 지휘와 함께 국악관현악 ‘아리랑’을 시작으로 우륵국악단 상임단원 김현혜의 피아노 협연으로 강상구 작곡 ‘아침을 두드리는 소리’, MBN ‘보이스퀸’의 준우승자이자 판라드(판소리+발라드)라는 장르를 탄생시키며 우리 음악을 알려온 소리꾼 조엘라의 목소리로 뮤지컬 서편제 OST ‘살다보면·당부’, 강렬하지만 섬세한 테크닉의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 김인수의 ‘모듬북협주곡 타(打)’(이경섭 작곡)가 연주된다.마지막 곡인 신명나는 국악관현악 ‘축제’(이준호 작곡)를 통해 우륵국악단의 풍성하고 아름다운 소리의 화합을 선보일 예정이다.
-
'서편제' 김명곤 전 문화장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영화 '서편제'에 출연한 배우이자 연출가 출신인 김명곤(71)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김 전 장관을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 전 장관은 2014년 5월께 총연출을 맡은 뮤지컬과 관련해 업무상 하급자인 피해자와 대화하던 중 상대가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두 차례 한 혐의를 받는다. 김 전 장관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공연 전날 연출가로서 지적을 하자 그만두겠다는 피해자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손을 잡았다고 (피해자가) 주장하는 것"이라며 "당시 상황이나 분위기가 추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손을 잡았다는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상대방이 그리 주장한다면 그쪽 기억을 존중하겠다는 식으로 (검찰에) 진술했다"며 재판에서 소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장관은 극단 '상황', '연우무대' 등을 거쳐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 제작·연출·연기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서편제'에서 각본을 쓰고 주인공 '유봉'을 연기해 1993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행정가로 변신한 그는 2000년 국립중앙극장장으로 취임해 6년간 일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6년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서울=연합뉴스)
-
문화로 지역의 삶 바꾸는 ‘문화도시’ 조성…총 2600억 원 투입정부가 2025년부터 3년 동안 총 2600억 원을 투입해 문화로 지역의 삶을 바꾸는 ‘문화도시’를 조성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도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지역중심 문화균형발전’을 선도할 ‘대한민국 문화도시’ 조성계획 승인 대상지 13곳을 선정했다. 이에 조성계획을 승인받은 지자체는 1년간 예비사업을 추진하고, 문체부는 문화도시심의위원회의 예비사업 추진실적 심사를 거쳐 내년 말에 최종적으로 ‘대한민국 문화도시’를 지정할 계획이다. 이번에 선정된 지자체는 세종특별자치시, 강원 속초시, 대구 수성구, 부산 수영구, 전남 순천시, 경북 안동시, 경기 안성시, 전북 전주시, 전남 진도군, 경남 진주시, 충북 충주시, 경남 통영시, 충남 홍성군 등 총 13곳이다. 대한민국 문화도시에는 3년간 국비 1300억 원과 지방비 1300억 원 등 최대 2600억 원을 투입하는데, 이를 통해 2000만 명이 동네문화공간 2만 곳에서 문화를 누리고 약 1조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300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지역만의 특화 문화로 세계적인 문화도시 성장 : 안동시, 안성시, 진도군, 진주시, 통영시 먼저 안동시는 한국의 유교문화·정신문화 등 전통문화 자원을 활용해 세계인을 사로잡는 세계적인 전통문화도시를 비전으로 제시한 점과 낙동강문화벨트, 유교문화권 등 경북권 문화균형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과 여건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안성시는 안성장, 바우덕이 등 안성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 경기권역 전체를 아우르는 문화를 교류하는 안성문화장을 표방한 계획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또한 진도군은 진도아리랑, 전통 무용 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속문화 마스터클래스 특성화 사업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문화도시로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았다. 진주시는 보부상으로 대표되는 문화상단의 가치를 담아 경남의 문화-관광-경제를 잇는 광역형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점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어 통영시는 과거 12공방으로 대표되는 예술자원을 계승·발전시킨 통영 12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해 ‘통영, 도시 자체가 예술’이라고 도시 브랜딩을 차별화한 계획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문화가 지역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성장동력 : 세종시, 수성구, 순천시, 전주시, 충주시 세종시는 기존 행정중심 발전전략에 따른 문화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세종을 대표하는 한글을 도시 곳곳에 입혀 ‘세계를 잇는 한글문화도시’로 도약한다는 계획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구 수성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각예술허브와 공예생태계를 조성해 수도권과는 차별화한 콘텐츠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선도모델을 제시한 점이 인정받았다. 순천시는 정원으로 도시를 변화시킨 경험을 토대로 정원에 문화콘텐츠를 접목시켜 다시 한번 문화로 도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전략이 기대를 모았다. 전주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도시에서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을 접목한 문화산업 생산기지로 전환을 계획한 점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충주시는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문화창작자, 지역주민 등과 협력해 중부권 글로컬 중심도시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예술 행사를 추진하는 충주명작 특성화사업이 지방에서도 품격있고 세계적인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에서도 누구나 문화를 누리는 거점 도시 : 속초시, 수영구, 홍성군 속초시는 급속하게 팽창한 관광도시 성장 이면에 문화적 소외를 경험한 지역주민 더 나아가 강원권 주민의 문화향유 확대를 위한 특성화사업을 제시하는 등 관광객과 지역주민 누구나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부산 수영구는 골목에서 바다까지 도시 전체에 문화를 입히는 전략으로,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365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문화향유 거점도시를 지향한 계획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홍성군은 도농복합도시의 문화불균형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홍성군을 5개 지역콘텐츠특구로 구분해 유기적인 문화도시를 표방한 계획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이번에 대한민국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승인한 13곳은 지역만의 특화 문화가 도시 전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변화의 바람이 그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의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체부는 13개 도시와 함께 내년 1년 동안 치밀하게 계획을 다듬어, 끝까지 책임지고 컨설팅을 진행해 도시를 선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자체와 함께 문화로 도시 전체를 바꾸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
국립극장 송년판소리 '안숙선의 심청가-강산제'국립극장은 2023년 완창판소리 마지막 무대인 <송년판소리-안숙선의 심청가>를 오는 30일(토)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판소리 한바탕 전체를 감상하며 그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연으로, 12월에는 연말을 맞아 명창 안숙선과 함께하는 <송년판소리> 무대가 마련된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이자, 이 시대를 대표하는 대명창 안숙선은 지난 2010년부터 <송년판소리> 무대를 도맡아 오고 있다. 올해는 강산제 ‘심청가’를 들려주며, 국립창극단 단원들과 함께 꾸미는 특별 무대도 선보인다. 2023년 <송년판소리>는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강산제 ‘심청가’ 완창 무대로, 안숙선 명창을 중심으로 다섯 명의 제자 박성희·김지숙·허정승·박민정·박자희가 분창자로 함께한다. 강산제는 조선 후기 8대 명창 중 한 명으로, 서편제의 시조 격인 박유전이 전남 보성군 강산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며 창시한 유파다. 박유전-정재근-정응민-성우향으로 계승됐고 안숙선 명창은 성우향에게 강산제 ‘심청가’를 배웠다. 강산제는 음악적 형식미가 뛰어나고 이면에 맞게 잘 짜인 소리라고 평가받는다. 절제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성음 변화를 중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강산제 ‘심청가’ 완창은 국립남도국악원 성악악장인 허정승의 소리로 시작한다. 허정승은 곽씨부인이 죽은 후 심봉사가 통탄하는 대목까지 들려준다. 이어지는 대목은 2023년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상을 거머쥔 박자희가 맡는다. 공양미 삼백 석을 얻기 위해 남경장사 선인들에게 몸을 판 심청이 행선 날 아침 부친과 이별하는 장면까지를 부른다. 이어 안숙선 명창이 무대에 올라 ‘심청가’의 대표 대목인 ‘범피중류’를 들려준다. 진양조의 장중한 대목을 대명창의 우아하고 깊은 소리로 감상할 수 있다. 네 번째 주자는 소리꾼 박민정으로, 심청이 물에 빠진 후 수궁에서 모친과 상봉하는 대목까지를 선보인다. 국립창극단 단원 출신으로, 현재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지숙은 ‘화초타령’부터 심봉사가 맹인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황성에 올라가는 대목까지 책임진다. 마지막은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단원 박성희가 장식한다. 고수로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김청만, 국립창극단 기악부장 조용수가 함께한다. 2부에서는 안숙선 명창과 국립창극단원이 30명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안 명창은 66년 소리 인생 중 절반에 가까운 세월을 국립창극단에서 보냈다. 1979년 국립창극단 입단 이래 20년간 소리꾼이자 배우로 수백 편의 창극 무대를 빛낸 것은 물론, 활발한 ‘작창(作唱, 창극에서 소리의 바탕을 구성 또는 창작하는 작업)’ 작업을 펼쳤고 1998년부터 약 7년간 단장 및 예술감독으로서 창극 발전에 기여했다. 국립창극단 후배들과 안 명창이 함께 꾸미는 무대는 안 명창뿐만 아니라, 국립창극단 관객에게도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다. 국립창극단 기악부의 깊이 있는 시나위 연주를 비롯해 화초사거리·육자배기·개구리타령·남한산성 등의 남도민요를 만날 수 있다. 국립창극단 개성파 배우 서정금과 최용석은 작은 창극 ‘뺑파전’을 선보인다. 해설과 사회는 유은선 예술감독 겸 단장이 직접 맡는다. 유 감독은 국립국악원 연구실장과 (재)국악방송 본부장을 역임했고 국악 작곡가이자 공연 평론가, 전통예술 분야 전문가로서 역량을 쌓아왔다. 국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다수 방송 프로그램 진행하며 대중과 소통해온 유 감독의 해설과 사회가 곁들여져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할 예정이다. 유은선 감독은 "연말을 맞아 국립창극단을 사랑해준 관객들과 함께 넉넉하고 풍성한 소리를 나누고 싶어 이번 송년음악회를 기획했다”라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끝을 특별하게 마무리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100년전 판소리 "춘향가 – 눈대목" 비교 시연회100년 전의 판소리 명창들이 부른 <춘향가>의 눈대목을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가 펼쳐진다. ‘논문 한 편을 보고 듣는 시연회’라는 부제처럼 이 공연은 100년 전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들이 판소리를 어떻게 발전·변화시켰는지를 비교해 볼 목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춘향가> 중 대표적인 눈대목인 ‘기생점고’와 ‘어사장모 상봉’ 대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번 공연은 서편제의 시조로 추앙받는 명창 김창환의 아들이자 전설적인 명창 임방울의 스승으로 알려진 김봉이(金鳳伊. 1878~1929. 전남 나주생)가 1915년 미국 빅타 레코드에 남긴 <춘향가> 중 ‘기생점고’가 109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또한 같은 해 이동백이 남긴 <춘향가> 중 ‘어사장모상봉’ 대목 전 곡이 사상 처음으로 공개되며, 1925년 중고제 명창 김창룡(金昌龍. 1872-1943. 근대 5명창. 충남 서천생)과 서도 명창 박월정(朴月庭. 1901~1960. 평남 강서생)이 일동 레코드에 각각 남긴 판소리 ‘기생점고’ 대목도 함께 공개된다. 김봉이(1878~1929)는 판소리 5명창으로 아버지 김창환을 사사했다. 1915년 미국빅타 레코드사가 김봉이의 <춘향가> 중 ‘이별가’와 ‘기생점고’를 녹음했는데, 그 중 ‘이별가’ 실물은 1993년 신나라레코드를 통해 존재 여부가 확인된 적 있다. 반면 ‘기생점고’는 그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으나 이번에 존재 여부가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김봉이의 판소리는 김창환에 비해 장식음이 많고 전조 현상이 보이는 등 서편제 초기 모습을 가진 판소리로 평가받는다. <수궁가> 인간문화재였던 명창 정광수는 김봉이의 소리를 ‘사람 소리가 아니라 귀신 소리’라고 평하기도 했다. 한편 같은 해 녹음된 이동백의 ‘어사장모상봉’ 대목은 그가 40대에 녹음한 <춘향가>의 유일한 자료로서, 박석티부터 장모가 좋아라고 대목까지 총 14분에 걸쳐 녹음되어 있다. 이 녹음 역시 이번에 처음으로 전모가 공개된다. 다른 유파의 ‘어사장모상봉’ 대목과 다른 점은 춘향이 옛집을 묘사하는 부분이 매우 섬세하고 장모 축원 대목이 길며, 장모가 좋아라고 대목으로 끝을 맺는다는 점이다. 아니리가 적고 슬픈 대목의 목구성이 담담하게 표현되는 전형적인 중고제 소리를 보여준다. 김창룡과 박월정의 ‘기생점고’는 1925년 일동레코드에서 녹음되었는데, 김창룡의 ‘기생점고’는 아니리를 창으로 부르는 특징이 있으며, 서도소리꾼이면서 판소리 명창이기도 한 박월정 역시 ‘기생점고’를 아니리 없이 부른 공통점이 있다. 박월정은 조선 후기 대명창 정춘풍제를 잇고 있는 충남 홍성의 유공렬과도 친분이 있는 등 중고제를 배운 것으로 추정되는 소리꾼으로, 서도 시김새와 남도 창법을 절묘하게 배합해 판소리를 구사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날 무대는 현재 판소리계에서 젊은 천재 소리꾼으로 인정받고 있는 5명의 국악인이 꾸민다. 판소리 대통령상 수상자로 국가문화재 판소리 이수자 박은정(45)은 정정렬의 <춘향가>를 재현하며, 조상현 명창의 제자로 22년 KBS국악대경연 대상을 수상한, 국립창극단의 새내기 단원 이성현(28)은 이동백의 <춘향가>를 재현한다. 오랫동안 중고제 명창의 소리 재현에 힘쓰고 있는 이효덕(37)은 김봉이와 정정렬(丁貞烈. 1876~1938. 근대 5명창. 전북 익산생)의 <춘향가>를, 구례동편 판소리를 잇고 있는 차세대 소리꾼 박지수(22)는 김창룡의 <춘향가>와 김초향(金楚香. 1900~1983. 대구생)의 <춘향가>를 각각 재현한다. 판소리가 아닌 서도소리를 전공하며 현재 ‘타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나라(36)는 박월정의 <춘향가> 중 ‘암행어사 출도’ 대목을 부른다. 고수는 송만갑 고수대회 명고부 장원을 차지한 김민서(44), 최재명(23) 명고가 맡는다.
-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11월 '정순임의 흥보가-박록주제'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은 '완창판소리-정순임의 흥보가'를 다음달 11일(토)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이자 여든을 넘긴 관록의 정순임 명창이 깊은 공력의 소리로 박록주제 ‘흥보가’를 들려준다. 1942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정순임 명창은 판소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집안의 계보를 이어 판소리 계승·발전에 헌신해 온 인물이다. 고종의 교지를 받은 어전(御前) 명창 큰 외조부 장판개와 ‘8잡가꾼’으로 불릴 만큼 기예가 출중했던 외조부 장도순을 시작으로, 외숙부 장영찬 명창과 어머니 장월중선 명창이 계보를 이은 정순임 명창의 가문은 2007년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전통예술 판소리 명가’(3대 이상 전통예술 보전․계승에 앞장서 온 가문) 1호로 지정됐다. 판소리 명창이자, 가야금·거문고·아쟁 등의 기악을 비롯해 춤에도 능했던 예인 장월중선 아래서 태어난 정 명창은 어린 시절부터 소리를 좋아했다. 1950년대에는 임춘앵의 국악단 공연에 매료되어 소리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단체에 입단하기도 했다. 이후 정응민 명창에게 ‘춘향가’ 일부를, 장월중선 명창에게서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를 배우며 본격적으로 소리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부단한 노력 끝에 1985년 남도예술제 판소리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20대 중반부터 경상북도 경주에 정착한 정 명창은 영호남을 넘나들며 동편제와 서편제 구분 없이 조화로운 소리 세계를 구축해 온 예인이기에 더욱 특별한 인물로 꼽힌다. 지역 내 판소리 전승에 힘쓰고 후학을 양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가 됐으며, 2020년 에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정순임 명창이 들려줄 판소리 ‘흥보가’는 가난하고 착한 흥보와 욕심 많은 놀보를 통해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아낸 작품이다. 사설이 우화적이고 익살스러운 대목과 아니리가 돋보이는 ‘흥보가’는 소리뿐만 아니라 아니리, 발림 등 판소리의 3박자를 두루 갖춘 소리꾼만이 제대로 부를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박록주제 ‘흥보가’는 송만갑-김정문-박록주-박송희로 이어진 것으로, 섬세하게 다듬어진 간결한 사설, 기품 있고 점잖은 소리가 특징이다. '완창판소리' 11월 공연은 여러 장단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가운데서도 균형 잡힌 발성을 자랑하는 정순임 명창의 소리로 박록주제 ‘흥보가’의 진면목을 느껴볼 기회다. 명실상부 ‘흥보가’의 권위자로 손꼽혔던 박송희 명창을 사사한 정순임 명창은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소리를 이번 무대에서 유감없이 선보이고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정 명창은 "소리꾼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장월중선 명창, 박송희 명창 등 나에게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 덕분이다”라며 "‘흥보가’ 예능보유자로서 큰 책임감을 가지고 완창 무대를 준비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명창의 관록과 깊은 소리가 돋보일 이번 무대에는 조용복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지도위원과 제31회 전국고수대회 대명고부에서 대상을 받은 장보영과 조용복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지도위원이 고수로 함께한다. 여기에 송지원 음악인문연구소장이 해설·사회를 맡아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1984년 시작된 이래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올랐던 꿈의 무대이자, 판소리 한바탕 전체를 감상하며 그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최장수 완창 무대다. 39년 동안 공연되며 소리꾼에게는 최고 권위의 판소리 무대를, 관객에게는 명창의 소리를 가깝게 접할 기회를 제공해왔다. 2023년에도 전통의 정체성을 지키며 소리 내공을 쌓고 있는 소리꾼이 매달 이 무대를 통해 소리의 멋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관객과 만나고 있다.
-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완창여정프로젝트 : 이해원의 심청가'판소리공장 바닥소리는 2002년 창단된 전통예술단체로 판소리에 뿌리를 두고 공연 및 음반 등 다채로운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장기 프로젝트 <완창여정프로젝트>를 통해 8인의 젊은 소리꾼들이 ‘완창’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찾은 자신만의 소리와 그 의미를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강나현, 정지혜 소리꾼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의 바톤은 올해 7월 한진수 소리꾼에 이어 11월 이해원 소리꾼이 넘겨받는다. 이해원은 판소리뿐만 아니라 음악극 등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다채로운 창작 활동을 통해 소리 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는 소리꾼이다. 전통음악에도 정진해온 그는 2018년과 2021년 각각 박봉술제 적벽가, 박녹주제 흥보가 완창무대를 선보인 바 있으며 이번 세 번째 완창무대에서는 김명남 명창으로부터 사사한 강산제 심청가를 장장 250분에 걸쳐 선보일 예정이다. 강산제는 서편제 명창 박유전의 호 ‘강산’을 따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라남도 보성군에서부터 소리가 전파되어 일명 ‘보성소리’라고도 불린다. 유려한 시김새와 변화 있는 말붙임새로 잘 짜여진 음악적 구성 속에 동편제와 중고제 맛이 스며있는 서편제 소리이다. 특히 심청의 지극한 효심을 공력과 분명한 성음이 특징인 계면조 소리로 풀어내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완창여정프로젝트>는 소리꾼들에게 ‘소리의 의미’, 그리고 연습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그 ‘일상’을 들여다보고자 시작하게 되었다. 더욱 나다운 소리를 찾아가는 젊은 소리꾼들의 뜨거운 여정에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2021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의 ‘공동기획 프로젝트’는 예술가가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서울돈화문국악당은 공연장 대관과 기획·홍보 및 무대기술 인력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 한 해 groove&, 정가앙상블 Soul지기, 이지영 등 여러 연주자들과 함께 다채롭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선보였으며 이번 무대는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와 함께 가을을 물들인다. 서울돈화문국악당 2023 공동기획 프로젝트 <완창여정프로젝트 : 이해원의 심청가>는 인터파크티켓(http://ticket.interpark.com)과 서울돈화문국악당 누리집(https://www.sdtt.or.kr)을 통해 예매 가능하며, 회차별 잔여 티켓이 있는 경우 공연 당일 현장 매표 후 관람할 수 있다.
-
(21)근대 전반기 대구지역춤의 전승 인맥(人脈) 고찰Ⅰ. 대구지역춤의 생태문화적 환경 대구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남동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더위는 심하고 기간도 길고 봄이 짧으면서 계절의 변화가 급속한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를 보이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배경으로 형성된 영남북부의 교통,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다.또한 대구인들은 뛰어난 적응력과 강안한 개척정신, 의리와 결단력을 매우 중시하여 든든한 느낌이 든다. 배타적이고 무뚝뚝한 점도 있지만 애교있는 여성도 많고, 대도시라 그런지 덜 폐쇄적이고, 전통적으로 보수성과 선비정신이 높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지리와 기후환경적으로 대구지역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분지기후(盆地氣候)를 이루고 있어 분지 내부의 복사열 등의 더운 기온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여 대체로 비가 적고 매우 건조하며,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덜 추운 지역이다.또한 역사문화적으로 넓게는 신라문화권에 속하며, 행정적으로는 영남북부문화권, 민속적으로는 백중문화권(단오 추석문화권), 내륙문화권이라는 광역적 성향도 기저에 깔려 있다. 따라서 대구지역만의 독특한 춤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미시적으로는 대구지역춤이며, 광역적으로는 영남춤의 성향을 지니고 있으면서, 거시적으로 한국춤계의 중요한 춤문화권과 영향력으로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근대시기 6.25한국동란으로 일시적이나마 대구에 중앙국립극장이 옮겨지면서 수많은 예술인과 무용들이 집중되는 현상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었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대구에서 펼쳐지는 세계안무페스티벌과 안무학술포럼을 통해 대구지역춤의 역사와 춤인물과 인맥과 현황을 고찰함으로써 대구지역춤의 역사에만 머물지 않고 한국춤의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고 미래춤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조선조 전통문화시대를 지나 190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이전까지 서구문명과 외래문화의 범람시기에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소멸되어가던 전통춤 전승에 수구적(守舊的)이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춤인맥을 고찰하고, 또한 시대조류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적인 근대춤 정착에 헌신한 춤인맥을 살펴 대구지역춤의 전승과 무용사적 의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만 심도있는 연구가 아닌 포럼이기에 아쉽지만 개괄적인 고찰에 머물 것이며, 연구방법은 문헌연구로 그간 대구춤과 관련한 학위 및 학술논문과 평문 등을 일별하여 요약문을 작성하였다. 대구지역춤 관련한 학위 및 학술논문 등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RISS)을 검색어를 통한 문헌 내용과 필자 소장문헌을 중심으로 고찰 정리하였다. 또한 대구무용계의 여명기를 개척한 1세대를 중심으로 뒤를 이은 2세대에 한하여 20세기 초중반기(개화기부터 1960년대까지) 무용인물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Ⅱ. 대구지역춤의 근대사적 배경 전통시대(조선조)의 춤은 대체로 궁중춤(정재, 일무), 민속춤(예인춤, 민간춤), 종교의식춤(불교춤, 무속춤) 등으로 전승되어 왔지만 우선 관심의 대상은 기방춤으로 궁중과 선상기(選上妓)로 활동하던 지방관기 전승의 교방춤과 기방춤으로 전승되어왔다. 대한제국시대와 한일합방의 급변속에서도 20세기(1900년대) 근대초기 관기제도의 폐지와 기생조합과 권번의 등장과 궤를 같이하며 경향 각지에서 나름의 전승체계와 색다른 공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전개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기생조합은 1904년 10월 10일 일본공사관의 제3호 경성관령으로 비롯된 창기 창녀의 사회적 공식화부터 비롯된다. 궁내부 제도 개편의 일환으로 시행된 1905년 여악(女樂)의 폐지, 1908년 7월에 ‘향사이정조칙(享祀釐正詔勅)’으로 관기들이 소속된 태의원(太醫院)의 의녀(醫女)나 침선비(針線婢) 등이 해체되면서 관기제도가 폐지되고 그해 8월 24일에 장례원 장악과가 해체되었다. 아울러 1908년 9월 15일 기생 및 창기 단속령과 1909년 4월 경시청의 창기조합조직 명령건 제정 등에 의해 우리나라에 적용한 일제의 공창화(公娼化) 정책에 의해 설립된 전국의 기생과 창기들의 동업조합이 곧 ‘기생조합’이다. 한편 기생조합소는 기업(妓業)을 주관하는 사업체 및 운영 사무실을 지칭하는 것인데, 초기에는 기생조합 또는 창기조합이라고 불렸다가 1917년경부터 일본식으로 ‘권번(券番)’이라 바뀌었다. 한국의 근대화의 물결과 근대춤의 시작은 대체로 1900년 전후로 나타난 세계사적 물결과 주변국과의 교류에서 비롯되었으며, 국내적으로도 조선시대 말 갑오경장(1894년)과 대한제국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문화조류가 파급되면서부터이다. 1902년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협률사(協律社)가 경성에 설립되어 그해 12월 4일부터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戱)>가 공연되었다. 그후 1907년 광무대(光武臺), 단성사(團成社), 연흥사(演興社), 1908년 장안사(長安社) 등 극장이 개설되었고, 광무대에서는 관기(官妓)의 가인전목단·검무(劍舞)·남무(男舞)·무고(舞鼓)·무동·성진무(聖眞舞)·승무(僧舞)·시사무(矢射舞)·이화무(梨花舞)·전기광무(電氣光舞)·지구무(地球舞)·한량무(閑良舞)등과 같은 춤 종목은 활동사진과 함께 광무대의 무대에서 공연됐다. 1915년 결성한 경성구파배우조합(京城舊派俳優組合)과 손잡고 광무대 7주년기념공연으로 새로 선보인 고구려무(高句麗舞)·공막무(公莫舞)·첨수무(尖袖舞) 등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톡청년학생음악단 내한공연(1921), 이시이 바쿠 내한공연(1926), 최승희의 <세레나데> 공연(1927), 배구자의 <아리랑> 공연(1928) 등으로 무용공연 등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면서 한국의 근대춤이 이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한편 조선후기 대구 관기들의 활동 배경을 살펴보면, 임진왜란(1592-1598) 이후 대구지역에 감영 설치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경주-상주로부터 이어져 온 감영이 옮겨오게 되었다. 곧 1601년(선조34년)에 경상감영이 대구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대구는 경상도의 중심적 거점도시로 변모되면서 많은 국가적 지역적 행사가 많아졌다. 경상감영과 대구부(大邱府)에 소속된 관기(官妓)들의 공적(公的)인 악가무 활동이 활성화 되었던 것이다. 경상도와 관련되는 국가적 행사는 경상감영이 주관하여 이루어졌고, 대구와 관련되는 지역적 행사는 대구부 관아에 소속된 관기들이 도맡아 행사를 치루었다. 당시 경상감영과 대구부는 같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중구 포정동에 위치한 경상감영공원(전 중앙공원) 일대이다. 영조 43년(1736년)에 작성된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에는 경상감영의 부속건물로 교방과 취고수방(吹鼓手房)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1768년에 발간된 『대구읍지大丘邑誌』1)에 의하면, 경상감영 교방(敎坊)에는 41명의 예기(藝妓)가 있었고, 대구부에는 31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또한 1888년에 자인현감 오횡묵(吳宖黙)이 적은 『자인총쇄록(慈仁叢鎖錄)』에 의하면, 경상감영 관하방(觀下房)에는 21명의 기생이 있으며, 대구부에는 17명의 기생이 영영교청(嶺營敎廳)에 소속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경상감영과 대구부 관아에 소속된 관기들은 악기, 노래, 춤 등 각종기예를 익혀 각종 공적인 연회에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또한 『경상도 읍지』(1832년경),『영남읍지』(1871년경, 1895년)에 대구부의 교방기생 31명과 관노 40명, 대구감영의 교방기생 35명과 관노 81명의 기록이 보인다. 그후 대구기생 향선(香仙)을 비롯한, 남수(藍水), 죽선(竹仙), 화월(花月)이 1908년경에 미국 빅타음반에 취입했음도 확인된다. 이와같은 관기들의 구성이 일제에 의해 1909년 4월부터 실질적으로 관기제도가 폐지(직제상 페지는 1908년) 되자 경상감영과 대구부 관청에 소속되어 있던 교방의 관기들은 사회로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사회로 진출한 관기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 바로 1910년 5월에 결성한 ‘대구기생조합’이다. 또한 1905년 경부선 철로가 개통된 이후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상업성을 가지고 자금을 투자하면서 1922년부터 ‘대구권번’으로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1927년 1월에는 한국인들의 주도로 관기 출신의 염롱산(廉隴山)을 권번장으로 하여 ‘달성권번’이 설립되었다. Ⅲ. 대구지역 근대춤 전승 인맥 대구 근대무용사의 대표적인 인물을 논하라 하면 주로 현대무용의 김상규, 주연희, 김기전, 정순영, 그리고 한국무용의 권명화 외 몇 분을 논하지만, 오늘날의 명맥 및 계승으로 살펴보았을 때 대구지역의 근대무용사의 기점은 대구 출신의 정소산과 전남 나주 출신의 박지홍을 들 수 있겠다. 1. 정소산의 전승인맥: 김수희, 하규일→정소산→백년욱, 최묘정정소산은 대정권번 하규일의 문하생으로 1900년대의 근대무용사의 현장에서 신무용의 거센 바람 속에서 궁중무에 대한 소중한 가치와 전통의 맥을 전승·보존하며 대구 근대무용사 맥을 이어온 선구자이며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대구지역의 한국무용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기점을 마련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소산에 대한 존재감까지도 잊혀진 채 21세기 현재에 이르렀다. 영남지역의 대구를 중심으로 근대무용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정소산의 무용활동에 대한 예술사적 평가는 대구 근대무용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으며, 무용의 역사를 되짚어봄과 동시에 미래지향적 예술적 가치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며, 기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춤 인생과 무용사적 가치는 대구지역 근대무용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중요한 가치 척도가 될 것이며, 대구지역의 근대무용사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 할 것이다. 조선시대 경상감영과 대구부 관아 소속의 관기들은 대구지역의 전통음악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도록 한 주역들이다. 조선시대 관기들의 구성이 일제에 의해 1909년 4월 경시청의 창기조합조직 명령건이 제정되자 경상감영과 대구부 관청에 소속되어 있던 교방의 관기들은 사회로 진출하여 단체를 구성하였다. 이렇게 대구의 관기 출신의 예기들이 주도적으로 1910년 5월 대구기생조합(大邱妓生組合)이라는 명칭으로 단체를 조직하여 명무(名舞) 김수희 조합장을 중심으로 결성하였다. 다만 김소희에 대한 이력사항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어 생년생몰 연대와 춤 경력에 대해 연구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대구기생조합이 개설되자 김수희 조합장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한 여섯 살(1910년) 난 어린 소녀가 정소산(본명은 정유색(鄭柳色), 호는 소산(小山), 1904-1978)이었다. 정소산은 1904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정사운과 상주 정진사댁의 막내딸로 어머니는 약방기생으로 유명했던 박남파 여사 사이의 1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형제들은 모두 비명에 죽었다. 정소산(유색)이도 어릴 적 몸이 약했는데, 기생이 되면 명이 길 운명이란 점장이의 말을 듣고 아버지 몰래 기생을 시키기 위해 춤을 배우게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구기생조합에서 김수희 조합장의 춤을 배운 후 정소산은 부산의 봉래권번<그림 2>, 수원의 화성재인청 등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17세(1921)에는 서울 대정권번에서 지냈다. 권번별 조합별로 조선의 예기들을 소개한 책 『조선미인보감』(1918)에는 원적과 현주소는 경성부 관철동으로 되어 있지만 경성에 머물던 주소인 것 같고, 원래 출생은 대구 중구 동성로 3가 12번지이다. 『조선미인보감』에 수록한 사진은 입적한지 1년 뒤인 18세 때 찍은 것이다.<그림 1> 원문에 보면 편모슬하의 무남독녀로 형편이 좋지 않아 권번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쁜(좋은) 이마와 발을 가졌으며 청랑한 음성으로 시조잡가를 하는 특징이 소개되고 있으며 부드럽고 착한 성품으로 처음 보아도 구면에 본 것 같고 행동과 말투가 구수하다고 정소산의 인물과 성품이 나와 있는데, 이는 대구지방의 사투리 표현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소산은 ‘다동조합’이 1918년 ‘대정권번’으로 바뀐(매일신보, 1918.1.27) 뒤 1921년 17세에 대정권번에 입적하여 당대의 명인으로 손꼽힌 인물 하규일(1867-1937)으로부터 1923년 19세에 본격적으로 궁중춤을 배웠는데, 김천흥이 전하는 하규일선생님이 가르친 궁중춤은 춘앵전, 무산향, 포구락, 장생보연지무, 무고, 선유락, 항장무, 가인전목단, 검무, 박접무와 재구성한 사고무, 성택무 등이었고, 여창가곡, 가사, 시조도 지도하였다. 하규일과 다수의 기생들이 1923년 대정권번을 탈퇴하여 그해 8월에 ‘경화권번’을 인수하여 설립한 ‘조선권번’으로 출범한 뒤에는 정소산이 직접 학감(1925년)이 되어 기녀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25년 23세 때에는 조선권번에 있던 대가 한성준(1874-1942)으로부터 승무를 배웠다. 그리고 1926년 이후 고향 대구로 돌아온 정소산은 1931년 3월 경북 예천에서 개최된 ‘예천대발전 신축낙성식 축하음악회’ 전단지로 대구조선정악단 일행이 출연한다는 팜플릿에서 확인된다. 달성권번 기생 신금홍을 비롯하여, 정류색(정소산)·황금주·이난향 등과 예천 기생들의 조연으로 소리와 춤을 공연하였던 것이다. 정소산은 가야금을 비롯한 춘앵무, 포구락 등 궁중정재와 살풀이춤, 승무, 장고, 법무 등을 탁월하게 추었다고 한다. 겨우 가정집 방 하나를 세내어 무용교습소라 차려놓고 가르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처음에는 궁중정재 위주로 가르쳤으나 인기도 없고 수입도 수월치 않아 살풀이춤, 승무, 장고 등도 혼합하여 지도하였다고 한다. 42세(1946)에 처음으로 발표회를 열었고, 46세(1948)에는 하서동에 ‘정소산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궁중춤 포구락, 무고, 검무 등의 전승과 보급에 힘썼다. 1969년 포구락, 검무, 무고의 궁중춤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지정 심사에 오르면서 그의 존재가 대구 지역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심사에서는 탈락했다. 궁중춤 이외에 잘 알려진 정소산류 춤은 ‘수건춤(흥춤)과 ‘달구벌 검무’로 유명하며, 1978년 사망할 때까지 후진 양성에 힘썼다. 한국국악협회 3~5대 경북지부장, 경북 문화상(무용 부문, 1962), 문화공보부장관상,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정소산(鄭小山)(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제자로는 그의 며느리였던 최묘정(최복순)과 백년욱, 김기덕, 김해덕, 양영숙, 이윤도, 강명자 등과 타지역 박금술(서울), 이화진(산주), 문소야(익산) 등이 있는데 현재는 백년욱 만이 지역무용계를 지키면서 정소산 춤의 맥을 잇고 있다. 1955년 열 살이 되던 해 정소산의 문하에 들어간 백년욱은 정소산이 타계할 때까지 스승과 함께하면서 정소산의 춤 세계를 체득했으며 2015년 대구시 무형문화제 제18호로 ‘정소산류 수건춤’으로 지정받았다. 정소산의 작품으로는 궁중무용을 중심으로 한 궁중무, 보구락(현재 궁중무용 포구락을 말함.), 무고, 검무, 춘앵무 등이 있으며 민속무로는 소고춤, 장구춤, 바라춤, 농악, 부채춤 외 창작무용으로는 여인의 미, 화랑무, 즉흥무, 조국의 혼, 무영탑, 미선, 꽃보담 내가 예뻐, 낙랑공주, 여인의 예상, 자명고, 단오놀이, 계월향, 낙랑공주, 논개, 직녀성, 원시인의 기상, 흥취 등과 무용극인 구운몽, 논개, 신라의 노처녀 등이 있다. 그의 춤 특징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춤을 추었으며 허리를 굽힌다던지 꼬는 동작들은 없었다는 것은 유장하고 의례적인 궁중정재의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강태홍의 전승인맥: 강태홍→조산월 등 35명1914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에 수록된 예인 100인은 주로 서울과 평양 중심으로 조사기록한 것이지만 몇 명 안되는 여타지방 출신 중에는 대구출신으로 조산월(趙山月)<13>, 옥화(玉花)<43>, 향심(香心)<61>, 설경패(薛瓊佩)<74> 등 4명에 대한 개인소개가 수록된 것만 보더라도 대구의 조합이나 권번출신들의 서울진출을 확인해주는 기사라고 볼 수 있다. 이어서 1918년 출간한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아오야나기 고타로(靑柳綱太郞), 지송욱(池松旭) 편저)에는 조선 예기 611명의 화보집인데, 대구조합(大邱組合) 소속 32명(28명 대구출신, 4명은 타지방출신), 김천조합 3명이나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앞서 1914년 매일신보에 기록된 조산월(趙山月)은 중복기록 되어 있어 옥화(玉花), 향심(香心), 설경패(薛瓊佩) 3명을 포함하면 35명의 인물들이 대구출신으로 춤과 가야금병창을 연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구권번의 춤공연 종목은 고무(鼓舞), 승무, 각항(各項)정재무, 검무, 남무 등이었다고 하였다. 당시 가야금과 가야금병창과 춤을 가르친 명인은 전남 무안 출신의 강태홍(姜太弘,1893-1957)으로 1911년(19세) 대구로 이주하여 대구(기생)조합에서 제자를 양성했었다. 이때 1918년 조선미인보감에 수록된 대구조합의 예기 32명중 춤 기예가 기록된 기생은 22명이다. 즉 염옥련(廉玉蓮: 23세, 정재무·남무), 이계화(李桂花: 22세, 검무·남무·각항정재무)와 김옥산(金玉山, 20세, 검무·남무·각항정재무), 도란옥(都蘭玉: 21세, 검무·승무·남무·각항정재무), 상남수(尙南秀: 16세, 검무·승무·남무·각항정재무), 안사운(安斯雲: 20세, 검무·승무·각항정재무, 이점홍(李点紅: 18세, 각항정재무), 권복경(權福璟: 21세, 정재무), 도송옥(都松玉: 18세, 정재무약간(呈才舞若干)·승무), 노소옥(盧小玉: 17세, 승무·정재무), 이도희(李桃姬: 16세, 승무·정재무, 윤월향(尹月香: 18세, 검무·고무(鼓舞)), 백금옥(白錦玉: 14세, 검무·승무), 전무선(全舞仙: 18세, 승무), 강매월(姜梅月: 19세, 검무), 최경란(崔瓊蘭: 15세, 선승무(善僧舞)), 그리고 서운향(徐雲香: 14세), 이계란(李桂蘭: 14세), 백초월(白楚月: 14세), 김산옥(金山玉: 16세), 민봉진(閔鳳珍: 16세), 허경희(許瓊姬: 15세)는 승무 한 종목과 국악종목이 기록되어 있다. 종목별로는 승무가 15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서 정재무 11명, 검무 8명, 남무 5명, 고무 1명 등으로 나타났으며, 정재무는 종목이 다양(50여종)하기 때문에 ‘각항정재무(各項呈才舞)’는 많은 정재무를 출 수 있는 능력자를 뜻하며, ‘정재무약간(呈才舞若干)’은 약간의 정재무를 출 수 있다는 뜻이다. 윤월향의 기록에만 고무를 공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무는 정재종목 중 하나로 윤월향(尹月香)이 여러 정재 중 고무(鼓舞)를 잘 추어서 기예기록에 기록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승무, 병창, 현금(玄琴), 산조, 양금, 가야금 등의 앞에 ‘선(善)’을 붙여 ‘선승무(善僧舞)’ 등으로 표기한 것은 남보다 ‘앞선다’는 뜻으로 우수한 능력자임을 표기한 것이며 ‘특(特)’ 또는 ‘특상(特上)’은 ‘특히 더 잘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또한 산조(酸調)의 한자표기가 오늘날 ‘산조(散調)’ 표기와 다름도 알 수 있다. 그밖에 김매월(金梅月)·박취옥(朴翠玉)·송홍련(宋紅蓮)·안선옥(安鮮玉)·우달경(禹達卿)·우연화(禹蓮花)·이미화(李美花)·조산월(趙山月)·최금란(崔錦蘭)·허금선(許錦仙) 등 10명은 춤 종목 없는 국악종목으로 가야금, 병창, 산조, 가곡, 현금, 양금, 잡가 등과 정자(正字), 초서(草書) 등의 서예도 기록하였다. 이상과 같이 1914년 대구출신 서울에서 활동한 이는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에 4명과 1918년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의 대구조합의 32 등 35명의 기녀들의 신상명세와 기예능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을 가르친 스승 강태홍(姜太弘,1893~1957)은 1911년(19세) 대구로 이주하여 대구조합에서 제자를 양성했으며, 그후 잠시 경주권번으로 갔다가 대구조합이 대구권번(大邱券番)으로 바뀐 후에 다시 돌아와 가르치다가 울산권번(蔚山券番)을 거쳐 1939년(47세) 동래권번(東萊券番)으로 떠났다. 당시 권번조직에서 교육을 담당한 지도자는 전국적으로 남자 재인(才人)과 창우(娼優)들이 춤과 소리와 악기사범을 맡아 지도했었다. 간혹 재능이 뛰어나나 나이가 많아 물러난 퇴기(退妓)들이 지도사범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관리자 역할을 하였다. 재인들이 지도사범으로 나서게 된 배경은 우선 어려서는 무동(舞童)으로 춤과 소리를 배워 추지만 성장하면서부터는 악사역할로 전환하여 악기연주와 수많은 춤과 소리반주를 하면서 장단변화와 춤동작 전개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지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지도력이 유명해진 재인들은 큰 고을로 모셔가는 것이 많아져 강태홍도 여러 곳의 권번을 거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부산동래에 정착하여 가르친 가야금산조(강태홍류)는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1989, 보유자 신명숙)로 지정되어 전승하고 있으며, 그 때 부산에서 강태홍의 춤을 배운 제자로는 한순서(강태홍류 춤보존회)와 김온경(부산무형문화재 제10호 동래고무 보유자, 1993) 등이 있다. 한순서(1941-)의 증언에 따르면 강태홍은 키가 작으나 흰머리에 변화무쌍하고 재주가 많으며 호쾌하고 멋있게 춤과 연기를 하였다 한다. 그래서 가야금도 다양한 기교로 배웠으며, 춤 역시도 다양하고 활기 넘치고 호쾌하게 춤을 추도록 배웠다. 특히 승무의 북가락은 지금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다고 전한다. 한순서로 전승된 승무는 재인계통 승무의 특색인 승복을 벗고 떠나는 결말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살풀이춤은 여인의 한과 감정을 담아서 추는 등 "어떤 춤이 됐던 태마가 있게 추어라”라고 하였으며, "극적인 감정을 살려 추어야지 밋밋하게 추는 것은 멋없는 춤이 된다”라고 지도 하였다고 한다. 그밖에도 춤집이 크고 호쾌한 영남 덧배기가락이 물씬 밴 소고입춤, 장고춤, 바라춤, 화관무, 초립동, 봄타령, 도라지, 꼭두각시 등을 전수받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00년대 초기 대구지역춤을 전승하며 이끌었던 무용인물로는 강태홍을 대표로 꼽을 수 있고 그의 지도를 받은 대구조합과 대구권번의 35명의 기녀들에 대한 자료의 편린(片鱗)이나마 반가운 일이며 아직은 증언자 있어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강태홍은 대구를 일직 떠나 전승력을 잃었는지 대구 전승자가 어딘가에 있는지는 조사연구할 시간이 부족하여 알 수 없다. 혹시나 대구에서 근거자료가 나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 3. 박지홍의 전승인맥: 박지홍→ 최희선(달성권번), 권명화(대동권번)근대의 여명기인 1911년에 대구조합과 뒤를 이은 대구권번의 악가무 지도사범으로 초빙되어 지도하던 강태홍이 떠나고 뒤를 이어 1920년대 후반 지도자로 초빙된 이는 전남 나주 출신으로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박지홍(朴枝洪, 1884,1889?-1958,1959?)이었다. 박지홍은 서편제의 대가 김창환(1854-1939)의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고 사촌형님뻘인 박기홍에게 소리 더늠을 이어받으며 수행고수를 하다가 대구로 이주하였다. 건장한 체격에 미남으로 「심청가」와 「흥보가」를 잘하였다. 박귀희(朴貴姬)가 그에게서 판소리와 단가(短歌)를 배웠고, 박초향(朴初香)이 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박동진(朴東鎭,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이 「흥보가」를 배웠다. 일제강점기 대구에는 대구기생조합(대구권번), 달성권번과 대동권번 세 곳이 있었다. 1927년 문을 연 달성권번은 대구시 중구 상서동에 소재해 있었고, 해방 후 대동권번은 1940년 전후로 설립되어 대구역 교동시장 근처에 있었다. 이때 달성권번에서 가무를 가르친 사람은 박지홍 외에 채승호(채찬복의 형)가 있었다. 달성권번에서는 춤, 시조, 가곡, 창 등을 공통적으로 익히도록 하였다. 박지홍이 창, 기악, 춤을 지도하였고, 박녹주가 판소리와 춤을 지도했다. 특히 춤에 특출한 기생들은 따로 입춤, 검무, 살풀이춤, 승무 등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대동권번 역시 기본 춤, 시조, 창 등을 공통과목으로 하고 춤으로는 입춤, 살풀이춤, 검무, 승무, 소고춤 등을 가르쳤다. 한편 해방 이후 나주에서 온 살풀이의 대가 박지홍(朴枝洪)에 의해 중구 교동(교동상가백화점 자리)에서 사설 대동권번(이후 남산동에 경북국악원 개설)이 생겨 대구지역에 전통음악교육의 맥을 이어나갔다. 아울러 달성공원 주위와 서문시장 등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 사설 기생교육단체가 여러 곳 생겨 대구지역 전통음악을 유지하게 되었다.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대구지역 전통음악예술의 원천은 일제강점기 대구기생조합을 비롯한 대구권번과 달성권번에 소속된 기생들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광복 후 대구의 대동권번에서 ‘기생들의 시험’을 실시하여 뽑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광복 후 두 번째의 기생시험을 1948년 9월에 실시하여 응모자 84명 중 60여 명이 합격되었다고 한다.이와 같이 가무를 하려는 기생이 되려면 이 권번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고, 그들이 3년간 수업을 받으면 요정을 출입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았다. 수업과목은 춤·시조·풍류·가야금병창 등이었다. 소리·춤·기악 등 악가무를 동시에 지닌 박기홍에서 박지홍으로 이어지는 달성권번, 대동권번의 춤이 대구지역 권번춤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음은 의미로운 사실이다. 이러한 박지홍 권번 교육은 최희선, 권명화에게 계승되어 현재 대구지역의 대표적인 전통 춤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최희선은 1929년 대구출생(2010.10.12. 작고)으로 10세 후반 명인 박지홍에게 전통춤을 배우며 무용계에 입문하여, 상경하여 1945년 장추화 무용연구소에서 춤을 배우고, 한영숙에게 전통춤 사사하고, 1950년 6.25 전쟁 이후 대구에 내려가 박지홍의 춤을 배우고 청구대학에서 공부하며 무용 활동을 하였다. 예그린악단 무용부장이었던 그녀는 1957년 제 1회 최희선 무용발표회를 시작으로 1958년 청구대학 강당에서, 1959년에는 서울국립극장에서 『승무』, 『부채춤』, 『화랑무』, 『장고춤』 등의 한국무용을 선보였다. 권명화는 1934년 경북 김천출생으로 6.25전쟁 중 피난간 대구에서 절집의 풍악소리에 사로잡혀 영남 최고의 풍류객 박지홍을 만나 1950년부터 사사 받고, 그에게서 배운지 6개월 만에 대구극장에서 열린 무용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1955년 박지홍 고전무용학원 강사가 되었다. 일제의 관할에 있었던 만큼 크게 번성하였던 달성권번은 해방이 되면서 곧바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대동권번은 해방 후에도 얼마간 존속되어 오다가 1950년 화재로 인해 없어졌다고 전한다. 박지홍이 운영하는 대동권번은 그해 남산동 포구당(포교당) 폐기된 절을 기녀와 회원들이 모은 돈으로 임대하여 ‘경북국악원’이라는 이름으로 권번의 역할을 대신하였는데 이때 김천에서 6·25한국동란으로 피난해온 권명화 가족이 피난하여 세든 집이 박지홍의 경북국악원 이웃집이어서 담너머로 연습하는 악가무를 보고 따라 흉내 내다가 용기를 내어 직접 찾아가 입회를 하여 전수를 받았다. 권명화가 전승하고 있는 춤은 승무, 살풀이춤(대구시무형문화재 제9호), 입춤, 소고춤, 검무 등과 경산자인단오제(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의 여원무를 비롯하여 단오굿 일곱거리의 부정굿춤, 산신축원굿춤, 천왕굿춤, 칠성굿춤, 대감굿춤, 장군굿춤, 대신굿춤, 해원굿춤이 있고, 축원춤으로 산거리춤(방울과 부채), 지전춤, 선비춤(한량무), 바라춤, 선녀춤, 오방신장춤, 장군칼춤 등이 있으며 건들바위 치성굿’도 복원하여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91년, 여수)에 출품한 적도 있다. 일제강점기 대구지역의 무대 예능화 된 전통춤은 박지홍을 정점으로 한 달성권번, 대동권번 등 두 개의 권번을 통해 전승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말 궁중 여령춤을 계승하고 있는 정소산(1898-1975)으로 그 맥이 이어져왔다. 따라서 권번이나 기생을 제외하고는 대구지역 전통춤의 역사적 맥락을 말하기란 어렵다. 박지홍은 대구에서 계속 연구소를 운영하였는데, 1958년 제1회 전국 민속경연대회에 경북 대표로 참가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제1회 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공연한 작품은 쾌지나칭칭나네, 하회별신굿, 경산옹헤야, 함창모내기놀이, 안동놋다리였다. 당시의 출연진은 신장대에 박지홍, 먹중과 분네에 최희선, 초랭이에 김경자, 양반에 채승호, 선비에 채찬복 등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 당시의 제일 극장에서 앵콜 공연을 준비하다가 장구채를 잡은 채로 과로로 쓰러져 며칠간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다 마침내 운명하였다. 이 시기의 대구의 전통춤은 기방춤으로 일컬어지는 박지홍류와 궁중무인 정소산류로 크게 대별됨을 알 수 있다.4. 김상규의 전승인맥: 김상규→최영자, 이숙재, 주연희, 서진은 등 대구에서 현대무용이 시작된 시기는 1930년대로 볼 수 있다. 일본의 현대무용 개척자인 이시이바쿠(石井幕)는 우리나라에서도 현대무용의 씨앗을 뿌린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시이 뒤를 이어서 최승희, 조택원, 조용자, 김상규, 김한일, 장추화, 박용호 등 많은 한국의 무용가들이 활약하였다. 대구에서의 현대무용 공연은 1935년 최승희가 대구 공회당에서 한 것이 효시였고, 1936년에 조택원이 같은 장소에서 도불(渡佛)고별공연을 한 것이 그 다음이었다. 중국에서 일본군을 위문하기 위한 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던 이시이가 귀국도중 대구에 들러 1944년 7월 하순에 대구 공회당에서 공연을 하였다. 같은 해 최승희와 조택원도 대구공회당에서 무용공연을 가졌으며, 8.15광복 직전에 이시이의 문하생 조용자도 대구 공회당에서 발표를 가진 바 있다. 그는 1947년 현재의 대봉동 전신전화국 자리에 대구 최초로 무용연구소를 차려 활동하였다. 해방 된 이듬해인 1946년에는 발레를 전공한 한동인과 정지수가 키네마에서 공연을 했고, 그 해 가을 장추화, 이석예도 발표회를 가졌다. 1947년에는 이시이 문하생인 박용호와 조용자의 무용공연이 만경관과 키네마에서 있었다. 또한 경북여고를 졸업한 뒤에 신성무용소를 열어 후학을 지도 한 김선화가 키네마에서 공연을 하였으며, 대구여중 무용교사였던 하복조와 경북여고 무용교사였던 주연희가 찬조출연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지금의 대구 현대무용을 존속케 하는 역사적 효시에는 김상규(金湘圭, 예명 技波, 1922-1989)가 있었다. 김상규는 1922년 5월 25일, 경북 군위군 군위면 금구동 134번지에서 안동 김씨 집안의 부농한 아버지 김병호(金怲鎬)와 어머니 정직영(鄭稷英)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상규는 누나인 김무숙이 태어나고 5년 만에 낳은 자식이어서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으며 한 번은 엿장수가 "엿 사시오?”하며 가위를 "쨍강쨍강” 치자 동생(상규)이 "거기에 맞춰 춤추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누나 김무숙이 말하였다. 또 마을에 남사당패 거리나 서커스단의 공연이 오면 하루도 빠짐없이 구경하며, 이들이 떠날 때면 동네 어귀 멀리까지 따라가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성대다가 울면서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그 당시 김상규의 마음속 우상은 연희패들이었고 자신도 언젠가는 이들과 같은 연희패가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대구로 유학하여 수창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1931년 9월16일 대구극장에서 공연한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공연을 보면서부터 무용에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법학공부해서 판검사 돼서 오겠다고 핑계를 대고 14세(1935)에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와세다중학교를 다니면서 저녁에 이시이바쿠 연구소에 가서 신무용을 배웠으며, 동경전기학교(현 대학승격)를 졸업한 뒤 1941년 와세다대학 문학부와 1943년 동경음악과를 수학해 다방면의 관심을 보여주었고, 1946년 10년의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예능분야에 뛰어난 김상규는 영화, 연극, 음악, 회화부문까지 다방면에 재능이 있어 골고루 습득하였다. 농촌의 자연미와 순박성, 넉넉함의 감수성은 무용가로 활동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여성들도 사회적 인식을 깨기 힘든 시절에 남성무용수로 향토 대구의 현대무용을 개척하고 뿌리 내리게 한 선구자로 평가할 수 있다. 김상규는 조택원, 최승희, 이시이 등의 공연을 보고 무용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판검사가 되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문하에서 다년간 수련을 하고, 대구로 돌아와 신무용 보급을 한 인물이었다. 1945년 8.15광복이후 정치적 혼란기를 거친 다음 대구무용계도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김상규는 1946년 귀국 후 바로 신무용연구소를 개소하였고, 1949년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하고 만경관에서 가진 그의 ‘김상규 신무용 발표회’라는 타이틀의 첫 발표회에는 최희선, 최미연, 박근숙 등 20여 명이 출연하였으며, 이는 대구지역에서 자생한 신무용의 첫 보급이라 할 수 있겠다. 1950년 7월에는 6·25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문총구국대가 결성되어 김상규가 무용분과위원장으로 선임되었으며 이 무렵 문하생으로는 김화심, 최영자, 문명희, 이빈화, 박득남, 김경자, 주연희, 박득순, 장성자, 박근숙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얼마 후 문총구국대 경북지대는 해체되고 1951년 12월 19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경북지부가 발족되었으며, 무용위원장은 김상규가 맡았다. 1951년부터 김상규 무용발표회가 국립극장(키네마극장, 현 한일극장, 전쟁 중에 중앙국립극장이 대구로 옮겨짐)에서 자주 열렸고, 이때의 출연자들로는 이월영, 최미연, 이빈화, 최영자, 한순옥, 장일, 문영희, 백운향, 박득남, 박득순 등이 있었고, 김경자, 이숙재, 백년욱 등이 어린나이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김상규는 전쟁이라는 혼란과 모든 공연운영비를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1952년 4월 14일에서 15일(오후 1시, 7시)까지 대구문화극장에서 제2회 김상규 신무용발표회를 가졌으며, 휴전될 무렵인 1953년 6월 4일에서 6일(오후 1시,3시 30분,7시)까지는 전쟁 때문에 대구로 무대를 옮겼던 중앙국립극장(현 한일극장)에서 제3회 김상규 신무용발표회를 했다. 뚜렷한 연습장 하나 없이 초․중․고등학교 강당이나 창고, 업무가 끝난 사무실 또는 옥상 등을 이용하여 연습하였으며 미제 내의를 검정으로 물들여 연습복으로 입고, 제대로 된 무용화 없이 맨발로 시멘트 바닥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하였다. 그리고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습과정을 거친 후 공연을 하기 위해서 모든 운영비(의상비, 무용수들과 악사들의 숙식비, 조명비 등)를 개인이 책임졌기 때문에 많은 관중이 몰려 들었음에도 그 경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무용가와 무용가를 둔 집안은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김상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품 발표회를 해마다 열다 보니 논밭을 팔게 되고 결국은 집까지 팔게 되어 셋방으로 전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활형편은 어려워도 대구에서 인정받는 향토계의 춤꾼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대구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남성무용수로 작품세계는 끝없이 폭을 넓혔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춤을 사랑하고 향토계에 예술세계의 밑거름이 되도록 터전을 닦았다. 1956년 이후의 대구무용계는 여전히 김상규의 독무대였다. 김상규는 1951년 제1회 김상규 무용발표회를 가진 이후 1955년 제5회, 1957년 제 6회 무용발표회를 가졌다. 김상규 문하생이었던 김상아, 구숙자, 주연희, 장성자, 서차애 등이 키네마에서 열린 제 6회 김상규 무용발표회에 출연하였다. 개인발표회가 없었던 1956년에도 경북예술제에 찬조출연하여 『아뜨리에의 환상』, 『성당의 아침』등 화려한 무용의 향연을 베풀었다. 김상규는 무용인으로는 처음으로 1957년도 경상북도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혈육으로는 대구 가톨릭대 무용학과 교수 김소라가 있으며, 1989년 작고할 때까지 100여편의 작품을 안무하였다. 손꼽히는 제자로는 최영자, 백운향, 박덕남, 박덕순, 백년욱, 이숙재, 김상아, 주연희, 서진은, 장성자, 오애리, 정선자, 김예숙, 이명주, 박성실, 김미연 등이 있다. 김상규의 작품세계는 첫째, 자신의 삶과 주변을 투영시켜 만든 작품으로는 「동심」,「처녀총각」,「애기와 어른」,「형제」,「명상」,「봄노리」,「젊은 날의 추억」,「봄처녀」,「파동」,「새싹」,「무영탑」,「파랑새」,「악몽」,「마음의 생태」,「망상」,「환희」,「월야」,「춘일서정」,「휴식의 환각」,「길손」,「목선」,「소녀시절」,「사의 유혹」,「화염」,「희망의 언덕」,「들국화 피는 시절」,「나그네」,「잃어버린 마음」,「가면무」,「고혼」,「애상곡」,「사슬을 끊고」,「가을의 회상시곡」,「의용」,「가로등」,「건망증」,「완행열차」,「기억을 기다리는 거울」,「은방울」,「초원의 동심」,「지평선」,「개구리의 합창」,「산소결핍」,「고목의 노래」,「수련」,「원색의 회량」,「가면의 생태」,「장미의 꿈」,「푸른 언덕」,「타임」,「작품B」 등이 있고, 둘째, 우리 전통적인 문화와 겨레의 민족성을 다룬 작품으로는 「활양」,「아리랑 삼조」,「황진이」,「향토의 인상」,「태공망」,「살풀이舞」,「건설」,「전설의 환상」,「마음의 생태」,「힘」,「호걸무인」,「검무」,「희생」,「기원」,「유상무상」,「순국의 처녀」,「백홍」,「타령조」,「산소결핍」,「이 흙이 있는 한 절망은 없다」,「수련」,「민족의 흥」,「전진」,「회귀」,「산하」등이 있으며, 셋째, 삶 자체를 불교에 의지해 온 평소의 모습과 심오한 종교관과 사상을 다룬 작품으로는,「창조의 신」,「정불국토」,「무영탑」,「기원」,「유상무상」,「탈속」,「남방의 서정」,「성당의 아침」,「재생」,「아잔타의 꿈」,「관음보살」,「보리수」,「생명의 향연」,「휘데아스의 꿈」,「니르바나」,「원색의 회량」,「간다라의 벽화」,「정각」등 1949년부터 1976년까지 13회에 걸쳐 100여 편을 발표하였다. 그가 30년 이상을 향토 무용계에 독보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주변의 시선에 어려운 점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무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시절부터 여성도 아닌 남성이 무용계에 뛰어들어 지역무용계에 토양을 이루어 낸 공은 인정받아야 할 일임에 분명하다. 5. 정막(정순영)과 김기전의 전승인맥 김상규와 별도로 대구 현대무용의 역사에 빠져서는 안 될 인물로는 정막(鄭漠, 본명 鄭淳永, 1928-2012)과 김기전(金起田, 1935-) 부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1950년 무용교육에 뜻을 두고 원화여고에서 정막 무용연구소로 출발했다고 언급한다. 정막은 1947년 겨울, 서울 명동의 문교부 인가 함귀봉이 설립한 조선 교육 무용연구소에 첫 발을 디딘 것이 무용예술의 입문이었고, 6.25사변을 통해 무용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현학선이 1953년 부산극장 종군극작가단 신작무대에 <인어의 정설>로 출연하고, 그해 8·15경축무용제에 중앙국립극장(전쟁으로 대구이전)에서 송범, 김진걸, 이인범과 함께 출연하였다. 그리고 1954년에 중앙국립극장(대구)에서 정막의 안무로 제1회 개인발표회를 가졌다. 김기전은 1935년 동경에서 태어나 1940년 여섯살 때 고향인 함경남도로 돌아갔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부산으로 피난 가서 경남여고와 부산대에서 공부하고 경기여대를 수료했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발표회 무대에 자주 섰다. 피난시절 이인범발레연구소에서 공부하고 1952년 임천수 국보오페라단에 1954년까지 단원으로 활동했다. 1954년 7월 육군 군예대(KAS)에서 무용 활동을 시작하였다. "초․중․고등학교 강당이나 창고, 업무가 끝난 사무실 등을 이용하여 연습을 했고, 미제 내의를 검정색으로 물들여 입고 다시 변형시켜 한번 더 입고, 3번은 활용했다.”며 당시의 열악했던 연습과정을 피력하고 있다. 1958년 12월에는 경북무용협회가 결성되어 키네마에서 창립공연을 하였는데, 정소산, 정막, 최희선, 현학선, 박금슬, 문소조 등이 출연하였다. 이 단체는 경북문화단체 총 연합회로 흡수되었다. 현학선도 이때 처녀무용발표회를 가져 향토무용계를 고무시켰다. 1961년 대구바레아카데미를 창설하고 부인 김기전과 대구지역에서 현대춤과 발레를 교습하여 춤인재를 양성하였다. 김기전은 국내 최초로 대구시립현대무용단을 설립하여 초대(1981~1988년) 안무자로 대구 현대무용계를 직업무용단으로 이끌어왔다. 정막은 춤 실연자이자 춤 연출자, 안무가로서, 그리고 춤 교육자, 이론가, 평론가로서 대구, 경북지역 춤문화의 구심체였다. 2000년에 이르러 (사)대구시민문화연구소를 차려 대구지역 춤문화를 비롯하여 시민문화 향상에 매진해온 일은 중앙중심의 무용편중에 대한 대항마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는 무용공연에 관계되는 모든 운영비(의상비, 무용수들과 악사들의 숙식비, 조명비등)를 개인이 책임졌기 때문에 많은 관객이 몰려들었으나 그 경비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따라서 재정적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실정이었다. 춤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무용가들이 세인의 눈총을 받으며 춤을 춘 배고픔 속에서도 민족혼을 고취시키고 춤 예술의 지평을 여는 창작 무용들을 계속 발표하였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좋은 환경의 무용세계를 후배 무용가들에게 물려주게 된 계기가 마련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Ⅳ. 결언- 근대전기 대구지역춤의 인맥적 특징과 의의 근대의 여명기라 할 수 있는 1960년 이전 대구지역춤의 전승인맥을 고찰하면서 살펴본 대구춤의 문화사적 가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정소산, 강태홍, 박지홍, 김상규 등 춤 명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구지역춤을 발전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여‘춤의 고장을 수립’하였다. 대구인들의 뛰어난 적응력과 강인한 개척정신은 근대 혼돈의 역사 속에서도 대구의 전통적 춤기반을 이어받아 전승하였고 새로운 현대춤도 정착시켜나갔다. 2) 각자 독자적인 춤정신과 다양한 춤방식으로 대구춤을 범한국적이고 세계적인‘안무도시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대구지역 전통춤의 자체전승을 비롯하여 타지역춤의 유입전승, 궁중춤을 민속춤으로 이동한 계층전승, 외래전승, 창조전승 등의 각자 다양한 전승원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대구지역 전통춤(교방 및 기방춤, 민간춤, 종교의식춤)을 꾸준히 계승한 자체전승을 비롯하여, 타지방무용인(박지홍, 강태홍)들을 초청하여 대구 전통춤으로 정착시킨 유입전승, 수준높은 궁중춤을 대구민속춤으로 정착(정소산)시킨 계층전승, 국제무대로 진출하여 현대춤을 세계적인 현대춤 도시(김상규)로 도약시킨 외래전승, 근현대 무용가들의 창작정신으로 대구현대춤(김상규, 정막, 김기전)을 발전시킨 창조정신 등으로 대구춤계를 주도하였으며 후대에 대구출신 무용가들이 경향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3) 대구감영과 대구부 예기(藝妓)들의 뿌리깊은 교방춤과 전통춤 등‘역사춤의 혈통 계승’으로 근대춤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이바지하였다.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1736)(1768),『경상도읍지』(1832년경),『영남읍지』(1871년경, 1895년)에 보이는 대구예기들의 교방춤과 1908년경에 미국 빅타음반에 취입까지 이어진 예기들의 후예의 피가 흐르고 있다. 4) 6·25동란으로 북한지방과 수도권 피난민이 대구로 집결하였고 임시 중앙국립극장 설립으로 ‘춤공연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당대 최고급 명무공연과 춤인적 교류가 활발하였다. 5) 대구지역춤에는 영남춤의 보편적 특징, 영남북부춤의 중심적 특징, 대구의 향토춤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영남춤의 요람(메카)’으로 발돋음하였다. 민간전승의 민속춤은 오랜 역사속에 뿌리내리며 정착된 전통문화이기에 생태적으로 영남권춤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며, 더불어 영남북부권의 거점도시로 영남남부와 다른 영남북부권춤의 특성도 지니고, 대구만의 향토춤도 여전히 전승되어 왔다.결국 대구는 근원적으로 한국전통춤 중에서 광역적인 영남춤의 성향을 지니면서 대구만의 지역민속춤의 특색을 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일제강점과 서구문화의 홍수와 6·25 한국동란으로 인한 대구집중화 현상 등 급변하는 역사와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구지역춤은 지역화, 탈지역화, 범한국화, 중심화, 국제화 등으로 중앙무대와의 교류가 활달하게 전개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20세기 근대전기의 대구춤의 문화사적 가치나 의의를 발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도 있다. 물론 한국근대사의 범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1960년 이전의 한국사회는 근대춤의 ‘여명기’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혼란기’이며 ‘전란기’이기에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전통문화의 ‘쇠퇴기’이며 외래문화의 ‘범람기’의 시련을 겪었다. 따라서 대구춤 역시 비켜갈 수 없는 운명으로 현란했던 관아의 교방춤과 권번춤은 역사의 뒤안길(박지홍, 정소산)로 접어들어 몇몇 춤꾼(최희선, 권명화, 백년욱 등)과 몇 가지 춤만이 명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었다. 시대조류에 따라 한국춤은 전통춤과 창작춤을 동시에 표현하는 어려움에서도 꿋꿋이 맥(백년욱, 주연희 등)을 이어 왔다. 현대춤과 발레는 대구(김상규, 최원경, 김기전, 구본숙)는 물론 서울 등지로 진출(이숙재, 김복희, 박인숙, 백현순, 이화석, 김용철, 손윤숙)하여‘춤의 고장’의 토양에서 성장하여 대구출신다운 유명 무용가들도 많은 점 또한 이를 반증하는 것들이다. 이제 많은 중견무용가들(박연진, 임혜자, 이정일, 김현옥, 장유경, 김희숙, 박현옥, 김소라, 강정선, 김죽엽, 최두혁, 오레지나, 채명)과 수많은 신진무용가들(김순주, 김나영, 김명란, 김현태, 김희경, 노진환, 박미향, 박정희, 박종수, 변인숙, 안지혜, 우혜영, 유연아, 이경화, 이수연, 이승대, 장 오, 장현희, 장혜린, 전효진, 조은희, 최석민, 최윤영, 추현주, 편봉하)등이 대를 이어 대구춤의 정신과 전성기를 향해 매진하고 있어 밝은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고 본다.(대구세계안무페스티벌 세미나에서 발제된 원고) ) 참고문헌 계명대 한국학연구소(2011). 영남의 지역예술연구.金宅圭·朴大鉉 編譯(1997). 大丘邑誌, 대구광역시.김영희(2006). 개화기대중예술의 꽃, 기생, 민속원.김죽엽(2010). 정소산의 작품활동을 통한 무용사적 고찰: 대구활동을 중심으로, 영남 악가무 재조명, 서울:한국국악학회.김죽엽(2011), 대구 근대무용사의 선구자 정소산의 정재가 대구무용사에 끼친 영향, 음악문헌학, Vol.- No.2, 한국음악문헌학회.김죽엽(2013). 대구 근대무용사의 선구자 정소산의 존재적 가치인식론, 한국무용학회 13권 2호.김채현·김영희·이종숙·김채원·조경아(2015,). 한국춤통사, 보고사.김천흥(2005). 우리춤이야기, 민속원.노동은(1995). 한국근대음악사1, 한길사.대구시사편찬위원회(1995). 대구시사. 대구시.대구예총(2012). 대구예총50년사. 대구: 동연합회.박민우(2013), 김상규 생애를 통한 무용사적 고찰,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석사학위 논문.박성실(1997), 韓國近代舞踊史에 나타난 金湘圭의 춤 硏究 : 敎育者的 成長科程을 中心으로, 中央大學校 大學院.박연진·장유경(1993). 대구 한국무용 30년사, 한국무용연구 11집, 한국무용연구회.박연진·장유경(1993). 대구예술 삼십년사. 대구: 대구예총.박황(1974). 판소리소사. 신구문화사.배연형(2011). 한국유성기음반 : 1907-1945, 권5. 한걸음 더.손태룡(2001). 每日申報音樂記事總索引:1910.5.30.-1945.8.15. 民俗苑.손태룡(2005). 달성권번의 음악사학적 조명, 향토문화 제20 특집호, 대구향토문화연구소.손태룡(2012). 대구지역의 기생단체 연구, 한국학논집 46,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송기영(2011). 정소산의 예술 활동이 대구 근대 무용사에 끼친 영향, 모드니 예술 5집,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송방송(2003). 京城放送局에 출연한 藝妓의 공연활동, 한국근대음악사연구, 민속원.송방송(2007). 증보한국음악통사, 서울: 민속원.宋芳松(2012). 한겨레음악인대사전, 서울: 보고사.송방송·이진원(2007).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 민속원.안제승(1984). 한국신무용사, 승리문화사.윤미라(2000). 대구 달구벌 입춤의 전승과 변형에 관한 연구, 대한무용학회 제28호.윤현숙(2007). 대구지역 무용의 흐름에 관한 연구,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이규리(2004). 朝鮮後期 外方官妓 硏究,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이병옥(2011). 영남춤의 생태민속학적 고찰, 한국무용연구, 29권 2호, 한국무용연구학회,이병옥(2013). 한국 전통춤의 분류와 양식적 특징: 정병호의 분류법 검토를 중심으로, 공연문화연구 27권.이숙영(1995). 지역문화 예술로서 현대무용의 활성화 방안 : 광주,대구,부산 지역 공연관람자를 중심으로. 조선대학교 석사학위논문.이숙재(1999). 技波 金湘圭 삶과 예술, 그리고 작품세계의 재조명, 한국 근대춤 인물사(1), 송수남 엮음, 현대미학사.이은주(2007). 춤 33인, 푸른미디어.정순영(2013). 대구춤 60년사, 사단법인 다다.주연희·구본숙(1993). 대구예술 삼십년사. 대구: 대구예총.채명·박정희(2010). 춤신을 만나다 권명화, 대구동구팔공문화원.채희완(2013). 춤창작과 비평에 예술공학 시스템을 도입함, 대구춤 60년사, 정순영 저, 사단법인 다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1998). 한국유성기음반총목록. 민속원.錄音文獻學會(昭和11). レコド文化發達史.<광무대(光武臺)>(한겨레음악대사전, 2012.11.2. 도서출판 보고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48646&cid=42607&categoryId=42607.<한국근대의 음악원형>(http://music.culturecontent.com) 참조.<다동기생조합(茶洞妓生組合)>(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대정권번(大正券番)>(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지방의 권번>(기생 이야기-일제시대의 대중스타, 2007. 7. 5, ㈜살림출판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87073&cid=42967&categoryId=42967.<조선 기생>, 연예인이 되다 – 역사채널e 2016.06.14. http://blog.naver.com/eunayoon715/220725445504.『매일신문』. 1958.8.10.『동아일보』. 1958.8.13.『매일신문』. 1958.8.9., 9.1.『매일신보』. 1972.11. 16.『매일신보』. 1914.1.28.-6.11.『대구시보』. 1948.9.23.월간 대구문화. 2007.4월호.이생강 면담, 2013, 면담자: 김죽엽.한순서 전화면담, 2016.7.13. 면담자 : 이병옥.한순서 면담, 2010~2013, 장소: 강태홍춤연구소, 면담자: 이병옥.권명화 전화면담, 2016.7.16.~18(3회), 면담자: 이병옥.
-
보성군, "매주 판소리 성지에서 보성소리 배운다"보성군은 오는 10월 12일부터 12월 15일까지 매주 목, 금요일 보성 판소리성지에서 하반기 판소리 교실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수업은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2시간가량 진행되며 소리교실, 고법(소리북) 교실 등 2개 분야로 운영된다.각 분야별 수강생을 모집할 예정이며, 신청은 10월 11일까지 가능하다. 수강료는 일반인 20,000원, 학생 10,000원이다.이번 소리 교실은 보성군립국악단 예술 감독 박춘맹 명창이 진행하며, 고법(소리북) 교실은 초빙된 전문가가 기초부터 가르칠 계획이다. 신청 방법은 보성군 홈페이지 → 열린행정 → 공연/행사에서 서식을 다운받아 보성판소리성지로 방문 접수하거나 팩스(061-852-4444) 등으로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보성군 관계자는 "서편제 보성소리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니, 많은 분들의 참여 바란다.”라며 "판소리 교실은 지역 주민, 관광객에게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보성 판소리성지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한편, 보성 판소리성지에서는 단체(20명 이상) 일일 판소리 교실 프로그램을 연중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신청은 보성 판소리성지(☎061-852-5206)로 하면 된다.
-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김영자의 수궁가-정광수제'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은 <완창판소리-김영자의 수궁가>를 10월 14일(토)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김영자 명창이 깊고 탄탄한 성음으로 정광수제 ‘수궁가’를 완창한다.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영자 명창은 8세에 강산제 보성소리의 계승자인 정권진 명창으로부터 ‘심청가’와 ‘춘향가’를 배우며 판소리에 입문했다. 이후 김준섭 명창을 비롯해 김소희·박봉술·성우향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을 두루 사사한 김 명창은 안정적인 중하성(아랫소리의 음)부터 시시상청(최고조의 고음)까지 거뜬하게 소화해 탁월한 목청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판소리 다섯 바탕(흥부가·춘향가·수궁가·심청가·적벽가)을 모두 완창한 것은 물론, 1985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부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또한, 1974년부터 1999년까지 국립창극단원으로 활동한 그는 소리뿐 아니라 발림(신체를 활용한 몸짓‧부채 등으로 극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것)과 아니리(일상적 어조로 말하듯 표현하는 것)에도 뛰어나 20여 년간 여러 창극 무대에서 주역을 도맡았다. 이외에도 전북 전주시에 국악 전수관을 개관하는 등 후학 양성을 위해 꾸준히 힘을 쏟아왔다. 김영자 명창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 카네기홀과 링컨센터 페스티벌,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등 해외 유수의 공연장과 축제에서도 완창 무대를 선보이며 전 세계에 판소리의 아름다움을 알려왔고, 국악 발전과 전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가 됐다. 이번 공연은 김 명창이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국립극장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완창 무대로, 정광수제 ‘수궁가’를 들려준다. 판소리 ‘수궁가’는 병든 용왕을 위해 토끼 간을 구하러 세상에 나온 자라가 토끼를 용궁으로 유인했으나, 토끼가 꾀를 부려 세상으로 살아나온다는 내용이다. 토끼가 재치를 발휘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재담과 소리로 들으며 삶의 지혜를 깨닫기에 제격인 작품이다. 등장인물의 언변 대결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노래하는 부분 등 아기자기한 대목이 많아 듣는 즐거움이 있다. 그중에서도 정광수제 ‘수궁가’는 동편제의 시조인 송흥록으로부터 송광록-송우룡-유성준-정광수로 전승된 소리다. 음악성과 문학적인 소양을 모두 겸비한 정광수 명창이 유성준 명창으로부터 전해 받은 ‘수궁가’ 사설을 다듬었다. 격식 있고 유려한 사설 표현이 돋보이며, 힘 있는 통성과 우조 성음을 바탕으로 하는 동편제의 특징이 잘 나타는 동시에 서편제의 다양한 기교까지 더해져 있다. 완창판소리 10월 공연은 1987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전수교육조교가 된 김영자 명창의 소리로 정광수제 ‘수궁가’의 진수를 감상할 귀한 기회다. 김 명창은 특유의 힘찬 목청과 실한 성음, 명료한 발음으로 다양한 동물 캐릭터 이야기와 약(藥)에 대한 용어 등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수궁가’를 누구보다 재미있게 들려줄 예정이다. 김영자 명창은 "완창 무대를 100여 회 넘게 섰지만 완창 무대는 아직도 긴장된다”라며 "일흔이 넘은 나이라 걱정도 앞서지만, 오랜만에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만큼 좋은 소리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 이수자 이태백과 국립민속국악원 단원 강길원이 함께 고수로 나서며, 해설과 사회는 송지원 음악인문연구소장이 맡아 작품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1984년 시작된 이래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올랐던 꿈의 무대이자, 판소리 한바탕 전체를 감상하며 그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최장수 완창 무대다. 39년 동안 공연되며 소리꾼에게는 최고 권위의 판소리 무대를, 관객에게는 명창의 소리를 가깝게 접할 기회를 제공해왔다. 2023년에도 전통의 정체성을 지키며 소리 내공을 쌓고 있는 소리꾼이 매달 이 무대를 통해 소리의 멋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관객과 만나고 있다
-
국내 최대 콘텐츠 전시회 '광주 에이스 페어' 14일 개막, 30개국 참가국내 최대 규모 콘텐츠 종합전시회인 ‘2023 광주 에이스페어(Asia Content & Entertainment Fair)’가 ‘Content DIVE!(콘텐츠에 빠져들다!)’라는 주제로 9월 14일 막을 올렸다.17일까지 나흘간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펼쳐지는 이번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광주광역시 관광공사,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광주디자인진흥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가 주관한다.올해 에이스페어는 방송·영상, 애니메이션·캐릭터, 디지털콘텐츠(게임, VR, AR) 등 콘텐츠 전 장르를 아우르는 전시와 광주 국제 ACE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콘텐츠 개발 컨퍼런스(CDC), 부대행사,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로 꾸며진다.국내 참가기업으로는 CJ ENM, SK Broadband, LG헬로비전, 한국직업방송, 대교어린이TV, 육아방송 등 주요 방송사들이 채널을 홍보하는 방송·영상존과 ‘다이노 파워즈’의 도파라, ‘팡팡 다이노’의 드림팩토리 스튜디오, ‘딜리버리 히어로즈’의 캐리소프트 등 캐릭터·애니메이션존도 구성돼 있다.해외 업체의 경우 대만 Taipei Multimedia Production Association, 대만무역협회, 인도 VidUnit Media, 이스라엘 Ananey Paramount, 스위스 Foo Entertainment 등이 참가한다.9월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간 다목적2홀에는 게임 & 보드게임 체험존이 마련된다. 레트로 게임, 아케이드 게임에서부터 VR 시뮬레이터까지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이외에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회원사에서 준비한 모바일게임과 한국보드게임산업협회 주관의 보드게임체험도 가능하다.비즈니스 수출상담회는 KOTRA와 광주광역시 관광공사 주관으로 9월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간 온·오프라인으로 운영된다. 국내외 참가업체와 바이어 간 공동제작, 투자 등 콘텐츠 비즈니스 전반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다양한 컨퍼런스도 동시 개최된다. ‘콘텐츠 개발 컨퍼런스(CDC)’는 ‘미래 신기술과 콘텐츠 제작·유통’이라는 주제로 9월 15일 개최된다. 전 워너브라더스 크리에이티브 최고책임자 제이슨 베번(Jason Bevan)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콘텐츠웨이브, 더핑크퐁컴퍼니, 뉴아이디, CJ ENM 등 국내외 콘텐츠 전문가가 참여한다.국내 최대 규모 라틴 방송계 포럼인 ‘제5회 라틴 K-콘텐츠 디시전메이커스 포럼’이 ‘글로벌 OTT, 공동제작의 미래’를 주제로 9월 15일 개최된다. 과테말라 인플루언서 ‘마리아르네’, 칠레의 팟캐스트 1위이자 인플루언서 ‘토마스’, 라틴 아메리카 최대 브라질 방송국 ‘글로보TV’, 페루 1위 방송국 ‘아메리카 티비’ 등이 참여해 국내 콘텐츠의 라틴 지역 내 발전 가능성에 대한 팁을 공유할 예정이다.‘제3회 케이쇼츠 공공 숏폼콘텐츠 컨퍼런스’도 동시 개최된다. 공공 콘텐츠 분야 베테랑인 경남도청 장수환 홍보담당관과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홍보담당관이 유튜브 채널 운영 차별화 방향 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MBC 소셜미디어 브랜드 ‘14F’의 손재일 디지털제작2부장, CF 및 영상 콘텐츠 제작 프로덕션 ‘26km’의 이상훈 감독 또한 참석해 콘텐츠 제작 분야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에이스페어와 동시 개최되는 ‘제4회 광주 국제 ACE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서는 60여 명의 작가들이 참가한다. NOMA, 호조, 채채, 짤태식(짤툰), 설기 등 초청작가들의 라이브 드로잉, 강연, 사인회도 진행된다.NC Soft가 후원하는 신인작가 발굴전에 선발된 10명의 작가들도 작품과 굿즈를 선보인다. 현장 참관객 투표를 통해 다득표한 2명의 작가를 선정해 NC 특별상을 시상한다.이 밖에도 광주 스토리 페스티벌 스토리콘, WAF LAND 페스티벌, 글로벌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세모귀 마켓, 쥬씨 페스티벌, 캐릭터 퍼레이드, 광주 & 프랑스애니메이션 상영, 광주 예술여행축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참관객들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전망이다. 미국, 중국, 독일, 이탈리아, 브라질 등 30개국 바이어 130여명도 행사를 찾는다.
-
'51년 전통' 충주 우륵문화제 탄금공원서 6일부터 5일간 열려충북 충주시는 51회 우륵문화제를 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탄금공원 일원에서 연다고 6일 밝혔다. 우륵문화제는 악성 우륵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1971년부터 열어 온 충주의 대표 문화예술 축제다. 올해도 다채로운 50여 개의 공연·전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우륵문화제는 이날 우륵, 강수, 김생, 신립, 임경업, 김윤후, 이수일 등 충주의 일곱 명인을 기리는 명현추모제로 문을 연다. 이날 오후에는 600여 명의 시민들이 충주 삼원초등학교에서 탄금공원까지 2.6㎞를 행진하는 시민화합 퍼레이드가 열린다. 개막식에서는 국악 뮤지컬 '가야금'이 첫선을 보인다. 7일에는 향토가요 콘서트와 창극 '새론기생점고'를 관람할 수 있다. 8일은 2023 대한민국청소년트로트가요제가, 9일은 가족 음악극 '수달의 꿈', 단편영화제가 주요 행사다. 문화제 마지막 날에는 가족 한마음 걷기대회와 시립우륵국악단의 기획연주 '우륵의 혼' 공연으로 마무리한다. 올해 우륵문화제는 일회용품 없는 친환경 문화축제로 치른다.
-
(22) 정광수의 ‘창극조 대춘향가’(1954년 발간)본명은 정용훈(丁榕薰), 호는 양암(亮菴)이다. 해방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판소리명창이다. 김창환, 유성준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으며, '수궁가'와 '흥보가'에 능했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이다. 1909년 9월 12일 전남 나주시 공산면 복용리 신동산마을에서 출생했다. 조선조 판소리 명창 정창업(丁昌業)의 손자. 1925년 16세에 나주군 삼도면 양화리(현 광주시 광산구 내산동)에서 김창환 명창과 아들 김봉학에게 판소리 춘향가 흥보가를 배웠다. 1936년에는 진주에서 유성준에게 수궁가 적벽가를 배웠는데, 유성준의 적벽가는 삼고초려가 없는 민적벽가이므로 이 부분은 1940년에 이동백으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또한 1940년 보성에서 정응민에게 심청가를 배웠다. 30대 이전에는 주로 학습과 독공을 하였고, 1943년부터 광복 때까지는 동일창극단에서 활동을 하였다. 1939년 6월 빅타 레코드에서 적벽가 새타령을 취입하였다. 1946년부터 1960대 초까지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광주예기권번, 광주국악원, 서동민속예술학원, 삼남국악원 등에서 소리선생을 역임했다. 1954년에는 광주에서 한덕수와 함께 창극조 대춘향가 사설집을 발간했는데, 당시 유행하던 정정렬 제 사설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소리선생으로서 교재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64년 처음으로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를 지정할 때, ‘지자군(持字軍) 대목(방자 편지 가져가는 데)’의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1974년 판소리 지정제도 개편 시에는 유성준 제 수궁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1976년에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기록사업의 일환으로 수궁가(처음∼토끼 배 가르는데)를 녹음하였고, 1991년 뿌리깊은나무에서도 수궁가 완창(3LP)을 취입하였는데 이 녹음은 오선보로 채보되어 있다. 1986년에는 자신의 판소리 5바탕 사설을 정리한 전통문화오가사전집을 출판하였다. 정광수는 김창환의 서편제 계열의 소리로 입문하였고, 나중에 유성준의 동편제 계열의 소리를 학습하였기 때문에 그의 소리는 동·서편제의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다. 긴장감 있는 성음을 구사하면서도 부침새가 정교하고 화려하여 어려운 소리라는 평을 받았으며, 또한 기품 있는 너름새를 구사하여 ‘조선조 광대의 너름새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유성준 제 수궁가 전승에 크게 기여하여 김영자·안숙선·정의진·정옥향 등 여러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2003년 11월 2일 향년 94세로 작고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문화훈장), 1995년 동리대상, 2000년 제7회 방일영국악상(方一榮國樂賞)을 수상했다.
-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고판사)과 '강감찬국악경연대회'서울특별시 관악구에서 10월 9일 한글날에 제5회 강감찬국악경연대회를 개최를 주관하는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리더 이승한 대표를 통해서 경연대회의 목적과 취지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Q. 먼저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표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전남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회사에 오랫동안 매니저로서 기획과 홍보파트를 담당했다. 학창시절 학생회장 출신의 경력과 당시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우연한 기회에 정치에 인연을 갖던 중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사회단체 대표를 맡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도시 빈민, 장애인 등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해 왔다. Q.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고판사)라는 단체를 설립하게 된 배경은 A. 저는 타고난 천성이 인문학적 사고이지만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선진 복지 실현을 위해서는 개헌 다당제 등 정치개혁이 우선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뜻을 세웠으나,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쳐 많은 상처를 입었다. 결국 21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정치에 거리를 두고 지역에서 심신을 추스르고 있는 차에 세계를 멈추게 하는 코로나가 왔다. 이때 판소리와 고법에 종사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듣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판소리와 고법을 접하게 돠면서 국악의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Q. '강감찬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게 된 배경은 A.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설립하고, 문화취약 계층에 대한 공연 활동을 지원하고 '강감찬 국악 경연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Q. 왜 고려시대 '강감찬'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주목하게 되셨나요. A. 고려시대 강감찬은 고구려의 을지문덕. 조선의 이순신과 더불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3대 영웅 중 한 분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강감찬 장군의 담대한 기상과 지혜가 필요하다. 강감찬 장군은 문인이다. 게다가 70세의 당시 적지 않은 나이에도 당당하고 굳건하게 외적에 맞선 영웅이다. 굳이 민족주의로 문화적 대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현대는 다양한 문화전쟁의 시대이다. 4차원의 AI의 기술력 뒤에도 결국 문화 컨텐츠의 싸움이다. 사실 21세기는 문화전쟁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강감찬 같은 도전적 모험과 용기가 필요하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관악구 낙성대이다. 서울 관악구 낙성대(落星垈)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그가 태어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해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 별이 떨어진 곳에 장군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신림동의 굴참나무는 강감찬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란 나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관악구에 사는 국악인들이 이러한 강감찬 장군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경연대회 명칭을 강감찬이라고 소환했다. '강감찬 전국 국악 경연대회'는 단순한 판소리의 경연대회을 넘어서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의 세계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성할 첫 단추를 만들어갈 것이다. Q. 관악구에 가면 '강감찬'을 기리는 역사적 공간이 있나요. A. 낙성대공원에는 장군의 기마상이 우뚝 서 있다. 그 주변에 강감찬 생가터와 장군의 영정을 모신 안국사가 있고, 강감찬 전시관이 자리한다. 안국사 안에는 귀주대첩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 해외에서 친구나 비지니스 만남이 있으면 저는 강감찬전시관을 시간 나는대로 1번지로 모시고 갑니다. 외세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온전히 지키게 해준 자랑스런 영웅이시죠. Q. 사업과 정치를 하시던 분이 국악이라는 문화컨탠츠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A. 문화는 근본적으로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함께 갖는다. 사업은 상상력과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고 각각의 변화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서 만들어지지만 결국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인자는 문화이다. 경제 현상이 눈에 보이는 단순한 물결이라면 그 저변에 흐르는 큰 해류는 문화현상이다. 결국 문화가 그 민족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Q. 왜 '판소리'에 꼽히셨는지요 A. 인류문화유산 '판소리'는 한글이라는 최고의 문화와 함께 스토리텔링이 있는 컨텐즈를 가지고 오랜 시간 구전되어 온 우리의 독특한 문화이다. 특히 판소리가 가지지고 있는 음악성과 서사성에 주목했다. 어떤 의미에서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의 K팝의 음악성과 영화 '기생충' '올드보이' '오징어 게임'과 같은 'K-드라마'의 스토리텔링, 또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한류'열풍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이다. Q. 일반인이 '판소리'를 배우기는 어려운데요. 특히나 '고법'은 더욱 어렵지요. A. 판소리는 성음을 습득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판소리와 고법을 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일고수 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라는 말이 있다. 판소리에서는 고수가 첫째로 중요하며, 명창은 그 다음이라는 의미의 용어이다. 고수가 지니는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는 말이다. 판소리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장단이고, 숙달된 고수의 장단 즉, 고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만큼 배우기는 쉽지 않다. 해외에서 판소리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작품이 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Q. 고판사의 앞으로 계획은 A.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 전 세 가지의 담대한 계획을 세웠다. 첫째, 테마가 있는 '판소리 순례길'을 만들 것이다. 즉 '한국형 산티아고길'을 구축하는 것이다. 진도에서 출발하여 서편제의 성지 나주 보성을 거쳐 동편제의 성지 남원 순창을 지나 중고제의 뿌리 강경을 경유 해 한양에 입성하는 450km 길이다. 둘째, '강감찬 장군'을 주제로 하는 창극을 만들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시티투어에 포함시켜서 서울대학교를 방문하고 관악아트홀에서 보여줄 것이다. 셋째, 전국에 판소리와 고법을 가르치는 300여 개의 어린이 '판소리 고법 아카데미'를 개설할 것이다. Q. 앞으로 국악 발전을 위해 개최되는 '강감찬 전국 국악 경연대회'의 취지를 더 한번 설명하신다면 A. 현재 우리 국악은 향유하고 있는 세대가 제한적입니다. 더욱이 트롯트 열품으로 국악 전공자가 그쪽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우리는 감각적이고 쉽고 다양한 외래문화에 묻혀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전통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수하기 위해서 일반인도 국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와 상황이 필요하다. 이제 국가가 그리고 행정이 나서야 한다. 한시적이고 일회성이 아닌 진지한 연구와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영웅 강감찬의 지혜와 애국정신이 필요하다. 1차적으로 '고판사'의 국악활동과 '강감찬 전국 국악 경연대회' 개최를 통해 실천하고자 한다. 관악구에 사는 사람들이 만든 고판사가 주관하는 '강감찬 전국 국악 경연대회'는 관악구에서 태어난 역사적 인물 강감찬 장군의 애국심을 기리고, 문화전쟁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영웅의 지혜와 용기를 배우고자 한다는 취지이다.
-
보성문화원‘대한민국 문화원상’대통령상 수상보성군은 지난 22일 보성문화원이 한국문화원연합회 주관 전국 231개 문화원을 대상으로 하는 ‘2023 대한민국 문화원상’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25일 군에 따르면 대한민국 문화원상은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문화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수여하는 상이다.보성문화원은 종합 경영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시상식은 오는 10월 개최되는 전국 문화원의 날 기념식에서 진행될 예정이다.보성문화원은 문화원 운영 규모, 프로그램 운영 수준, 지역 문화 발전 기여 등에 대해 5개월 동안의 1차 서류 심사, 2차 발표 심사와 3차 현장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2주간의 공개 검증을 통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김현진 보성문화원장은 "지난 1967년 보성문화원이 개원한 이래 2019년 10월 전국 최우수 문화원상 수상에 이어 올해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라며 "앞으로도 전국의 명실상부한 최고의 문화원으로서 지역의 문화를 보존하고 주민들이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보성군 관계자는 "4만 보성군민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보성문화원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으로 이뤄낸 성과라 생각한다.”라며 "앞으로도 문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한편, 보성문화원은 서편제보성소리축제, 향토문화 유적보존, 보성향토사 발간, 지역 문화 계발 활동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하며 지역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
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08)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우리 창극인들이나 고수 할 것 없이 제일 호사스러운 때가 언젤꼬? 그야 물론 원각사 시절이겠지요. 이동백이 묻고 한성준이 답하는 장면이다. 이동백이 말을 잇는다. 나도 그러이. 이전까지는 천시를 받아온 우리였지만, 고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대우를 받았고, 그때는 소리하고 춤도 출만 하였지. 순종을 한 대청에 모시고 놀기까지 했으니까....한성준이 받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군요. 한인호가 두꺼비 재주를 넘다가 잘못하여 바로 순종의 무릎에 떨어졌을 때, 큰 벌이나 받게 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순종께서 도리어 기쁘게 웃으시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 형님은 순종의 귀여움을 상당히 받았을 거요. 원각사에서 형님이 소리를 할 때면 순종께서 전화통 수화기를 귀에 대시고 듣기까지 하셨으니까요. 이동백이 다시 받는다. 그랬었지. 그때 창극조로 <춘향전>을 했지만, 그 규모가 지금보다는 훨씬 컸고, 또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좀 많지 않았소. 그러니 무대에 오르는 사람도 절로 흥이 날 수밖에 없었지."(한성준,1941년) 1941년 '춘추' 3월호에 실린 이동백과 한성준의 대담이다. 한인호가 두꺼비 재주를 넘다가 순종의 무릎에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연극 <이(爾)>에서 출발한 영화 <왕의 남자>, 장생과 공길이 연산군 앞에서 극을 펼치는 장면? 이벽화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패왕별희>에서 청데이(장국영 분)와 단샬로(장풍의 분)가 경극을 펼치는 장면? 아마도 연극 <이(爾)>의 지은이 김태웅씨는 <연산군일기>는 물론 창극의 일면들을 공부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위 대담에서 '창극조'라고 말하는 것이 이른바 판소리 창극이다. 창극은 언제 누가 어디서 시작한 것일까? 최초의 극장 원각사(圓覺社)와 창극조 판소리 <어사와 초동>이라는 초기 창극이 있다. 1909년 8월 이응일의 투자로 완공한 광주 북문 앞의 극장에서 9월 7일부터 공연되었다. 월북 명인 박동실의 광주 양명사 회고에 의하면 창극 <춘향전> 공연에서 가장 활발하게 공연되었던 레퍼토리였던 것 같다. 백두산의 연구에 의하면 이는 1908년 봄 원각사에서 공연하였던 창극 <춘향가>를 모체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각사(圓覺社)는 광화문 새문안교회 부근 야주현(夜珠峴, 야조개)에 세워졌던 개화기의 사설극장이다. 1902년 협률사(協律社)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극장은 1906년 문을 닫는다. 1908년 7월 박정동, 김상천, 이인직 등이 원각사라는 극장으로 리모델링한다. 이때 소속된 명기명창들이 백칠십 여명(박황의 증언)이었다. 판소리, 민속무용 등을 공연하다가 판소리를 분창하는 형태인 이른바 창극이 시도된다. 1909년 5월에는 전속 창부(唱夫), 공인(工人)들이 일본연극(아마도 가부끼일 것이다)을 널리 알리는 연습을 했다. 이보다 앞선 1908년 11월에는 이인직의 <은세계>가 신연극이라는 이름으로 공연된다. 이외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화용도> 등이 공연된다. 신연극과 구연극, 판소리와 창극을 버무리는 그야말로 고금합작이 이루어지던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창극을 만든 사람, 무안의 강용환 <춘향가>를 분창 형태의 '소리극'으로 꾸민 <어사와 초동>은 누가 구상한 것일까? 이 초기창극에 대한 관심은 100여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 협률사와 포장극단 시대를 거쳐 국립창극단은 물론 진도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강준섭이 즐겨하는 레퍼토리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박황은 <창극사 연구>에서 강용환을 구체적으로 거론한다. "강용환은 1900년에 상경하여 서울 동대문에 자리한 광무대협률사에 참가하고 그가 전공한 옥중가 한 바탕으로 장안에 이름을 떨쳤다. 그 당시 서울에는 지금의 청계천 2가에 수표교가 있었고 그 다리 건너에 청나라 사람들의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에는 '창극관'이 있었으며 이 창극관에서 날마다 '창우가 창극(경극을 말함)을 연희하였다. 강용환은 틈만 있으면 이 청국인의 '창극관'에 살다시피 하였는데 청국의 창희를 모방하여 판소리 춘향가를 창극으로 발전시켰다." 원각사 시절 강용환이 중국의 경극을 모방하여 판소리 춘향가와 심청가를 창극화하였고 무대 예술로서 첫발을 내딛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비교적 명료하게 밝힌 연구는 최근 출간된 '창극의 전통과 새로운 방향'(지우출판, 2021)에 실린 백두산 교수의 <무안출신 명창 강용환의 생애와 예술 활동 기록의 검토>다. 나도 토론을 맡아 몇 마디 보태긴 했지만 연구의 탁월함을 응원한 정도니 언급할 가치는 없다. 강용환의 사망시기와 관련들을 조목조목 규명한 대목이 눈에 띤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다룰 수는 없지만 요약하자면 호적이나 족보 등의 자료에 나타나는 강용환 사망 시기 이후의 창극 활동들을 규명했다는 점이다. 즉 1902년 사망설 이후 활동들이 광범위하게 포착되기 때문에 1903년에서 1907년까지의 서울 공연활동이나 1908년 원각사의 <춘향전>, <은세계>, <심청전> 등의 공연에서의 강용환 활동을 증명한 것이다. 이때부터 구성작가-연출가 면모의 자생적 창극개량 과정이 시도되었다. 동·서편제는 물론 고제 판소리 중에서 인기 대목을 취사선택하고 재담과 잡가 등을 섞어 희극적 장면을 고안하며 '연출'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김창환이나 이동백, 이인직 등에 비해 강용환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에 학술적으로 규명된 것은 승달우리소리고법보존회(이사장 서장식)가 18년여 동안 집중적으로 추적한 성과이기도 하다. 창극은 명실상부한 근대극이다. 어찌 보면 자생 근대극의 시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시기 모든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창극이 이제는 뮤지컬 오페라, 악극, 소리극 등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한다.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라는 뜻일까? 무안의 강용환을 매개삼아 창극이 발아하고 발전했듯이 이제 또 다른 관점의 음악극이 시도되어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법고창신의 지혜로 고금합작을 꾀하는 예술가들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무안출신 강용환 국악명가 일명 강윤학 3대 국악명가라고 한다. 강윤학은 친척 강백천과 교우하며 남원 운봉 박만순에게 소리를 배운다. 아들 강용환(강용안이라고도 함, 1866~1938)은 정정열, 이동백과 교유했다. 어전광대(왕 앞에서 판소리하는 이)다. 의친왕에게 장단을 가르쳤다. 우리나라 창극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강용환의 아들 강태홍(1891~1957)은 경주권번, 달성권번 등에서 제자를 양성했다. 강태홍류 가야금 산조를 창시했다. 부산지역 제자로 원옥화, 강남원, 박차경, 김춘지(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신명숙(부산시 무형문화재) 등이 있다. 강남중(1900~1972)은 숙부 강용환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오태석, 송만갑, 정정열 등을 사사했다. 일본에서 창극을 할 때 일본말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하여 고문을 당해 귀머거리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백범 김구에게 오현(悟峴)이라는 호를 받는 등 독립운동에도 관여했다. 이외에도 강준안, 강태종 등 명인이 있다. 아쉽게도 강용환 사진자료 등이 전무하다. 승달우리소리고법보존회에서 관련 창극 '명인의 봄'을 초연한 바 있다. 강윤학 집안의 3대 명인들을 모태로 출발 한 것이 무안 군립국악원이다. 현재는 3명의 상임단원과 6명의 비상임 단원뿐이지만 더 큰 활약이 기대된다.
많이본뉴스
많이 본 뉴스
- 1유튜브 아리랑 채널 운영자 정창관 선생 따님 시집 보내는 날
- 2제36회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06/23) (판소리.무용.기악)
- 3진도군, 인류무형문화유산 강강술래 공개행사
- 4하루키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2'
- 5두 줄이 내는 다채로운 숨, 해금 연주자 강은일 교수를 만나다
- 610주년 맞는 ‘문화다양성 주간’ 경계에 꽃이 핀다
- 7제66회밀양아리랑대축제&제10회밀양아리랑경창대회 26일
- 8전국 271팀 참가한 대구국악제, 영예의 대통령상에는 김선제 씨
- 9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일노래, 삶의 노래' 오는 23일부터
- 10(34) <br> 노동은의 ‘잘못된 조건’ 둘, ‘교묘한 조작’